http://news.dongascience.com/PHP/NewsView.php?kisaid=20120730200002323840&classcode=01
신개념 방사성의약품 개발 시급…美, 2015년 5조730억원 규모
2012년 07월 30일
우리나라 국민의 세 명 중 한 명이 걸린다는 암. 이 때문에 국내외 연구진은 암 치료제 연구가 활발하다. 특히 암 조직만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표적치료제는 부작용이 적다는 강점 때문에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데, 최근에는 이 표적치료제에 방사성 의약품을 붙여 더욱 효과적인 암 치료법이 연구되고 있다.
현재 미국의 방사성의약품 시장은 2006년 기준 14억8000만 달러(한화 1조6872억원) 수준으로 오는 2015년까지는 44억5000만 달러(한화 5조730억원)로 10년 동안 3배 정도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렇지만 국내에는 이를 전담하는 연구기관과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 이 때문에 정부는 오는 2017년을 목표로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한 치료기술 개발 플랫폼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관련해서 지난해 12월부터 현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수행 중에 있다.
실제로 제약 선진국들은 미래 의약품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와 방사성의약품 개발을 위한 투자에 나서고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경우 치료용 방사성동위원소 생산을 위해 70MeV(메가 전자볼트)급 고에너지 사이클로트론(원형가속기)과 연구기반 시설을 구축하고 있다. 이와 함께 알파입자 방출 방사성동위원소(At-211, Sm-153, Sn-117m등) 생산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에서도 신개념 암치료용 방사성의약품 관련 연구개발이 한국원자력의학원을 비롯해 여러 기관이 진행하고 있는데, 치료용 방사성의약품도 방사성동위원소 의존성이 높기 때문에 방사성동위원소 생산과 방사성의약품의 검증에 필요한 연구개발 플랫폼 구축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원자력의학원 측은 “세계적 제약사들이 갖고 있는 암치료제 원천물질 특허만료가 올해부터 시작돼 10년 내에 대부분의 블록버스터급 바이오약품들의 특허가 만료될 예정”이라며 “국내 제약산업 분야가 한 단계 도약하기 최적의 시점인 만큼 치료용 방사성의약품 연구개발 플랫폼 구축이 시급한 상황”아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달 20일 서울 노원구 한국원자력의학원에서 ‘방사선의약품 개발 및 임상이용 촉진방안 도출을 위한 공청회’가 열리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최근 들어 기존 항암제가 갖는 치료의 한계를 극복하고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대안으로 치료용 방사선의약품이 최근 세계적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지만, 국내의 경우 연구 인프라가 미흡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와 함께 공청회에서는 방사성의약품의 특성에 맞는 합리적인 안정성 및 유효성 심사제도와 방사성의약품 실용화 촉진을 위한 품질관리 및 임상연구 활성화 지원대책도 요구됐다.
한국원자력의학원 핵의학과 임상무 박사는 "방사성의약품 및 치료기술 개발은 국내 암 환자의 치료 성과는 물론 삶의 질을 크게 높일 수 있다”며 “전 세계적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방사성의약품 시장의 선점을 위한 국가 차원의 지원 방안 도출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donga.com
31 July 2012
박스오피스에서 거미인간 몰아낸 기생충
http://news.dongascience.com/PHP/NewsView.php?kisaid=20120730200002323685&classcode=01
[KISTI의 과학향기]
2012년 07월 30일
언제부터인가 공포영화의 소재가 초자연적인 존재에서 ‘있을 법한 생물’로 옮겨가고 있다. 여기에 그럴싸한 과학적 근거도 붙어 공포감은 한껏 고조된다. 한강의 ‘괴물’은 몰래 폐기한 화학약품 때문이고, ‘좀비’는 바이러스나 기생충에 감염됐기 때문이란 것이다.
이러한 트렌드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것이 ‘기생충’이다. 기생충은 숙주의 몸을 빌어 번식하는 생물인데, 다른 생물을 먹이로 하지만, 먹이의 몸 속에서 살아야하기 때문에 기생충은 포식자이면서도 먹이를 가급적 살려두는 이상한 생물체다. 그래서 기생충에 감염되더라도 겉으로는 별다른 점이 보이지 않는다. ‘멀쩡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몸속에는 무서운 생물이 있더라’ 라는 식으로, 익숙한 일상이 공포로 변하는 장치로는 충분하다.
올해 7월 초 개봉한 영화 ‘연가시’는 이런 공식에 충실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기생충은 실존하는 기생충의 변종이라는 설정에, 연가시에 현실감을 부여하기 위해 감염과 전파 과정에 초점을 맞추기도 했다. 실제 제약회사와 구충제가 실명으로 등장해 영화 개봉 후 영화 속 구충제를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후문이다.
●곤충을 좀비로 만드는 무서운 기생충들
연가시는 유선형동물문 연가시강에 속한 동물로 산 속의 맑은 물가에 떠다닌다. 은빛 양파 뿌리처럼 생겨서 실뱀, 철사벌레로 불리고, 영어로는 ‘말털(Horsehair)’이라고 부른다. 몸에 눈이나 숨구멍, 하다못해 플라나리아에게도 있는 안점(眼點)조차 없어서 얼핏 생물인지 무생물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자극에 대한 반응도 워낙 느려 손에 닿더라도 꿈틀대지 않는다.
물속에서는 이렇게 얌전해 보이지만 곤충의 몸속으로 들어가면 난폭해진다. 물속의 연가시 성충이 낳은 알은 물가로 온 곤충들의 몸속으로 들어가서 부화한다. 깨어난 애벌레는 숙주의 내장을 차근차근 먹어치우고 10~15cm 정도가 될 때까지 자라서 내장 대신 배 속을 빽빽하게 채운다.
경우에 따라서는 1m가 넘게 자라는 경우도 있을 정도니, 연가시가 자랄 대로 자라면 곤충은 말 그대로 껍데기밖에 남지 않을 정도다. 연가시의 주요 숙주 중 하나인 메뚜기의 배 길이가 3~4cm도 채 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공포 그 자체다.
텅 빈 뱃속을 기생충이 꽉 채웠다는 것만으로도 공포스러운데, 연가시는 숙주의 행동을 조종하기도 한다. 연가시는 공기 중에 노출되면 얼마 살지 못하기 때문에, 숙주의 몸속에서 자란 연가시가 번식하려면 가급적 빨리 물속에 들어가야 한다. 연가시는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해 숙주가 스스로 물에 빠져 죽도록 조종하며, 이때다 싶으면 숙주의 배를 찢고 물속으로 튀어나온다.
이처럼 무시무시한 생활사 덕분에 연가시는 대표적인 혐오곤충 중 하나인 ‘꼽등이’와 엮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지와는 다르게 연가시는 1급수에서만 사는 청정 생물이다. 사체나 썩은 유기물을 주로 먹는 꼽등이와는 상종할 일이 별로 없다. 영화에서 연가시가 1급수가 아닌 한강으로 풀려나오는 설정은 영화 속 '옥의 티' 중 하나다.
연가시는 숙주인 곤충을 조종해 물속으로 뛰어들게 만든 뒤 숙주의 몸속에서 빠져나온다. 위키미디어 제공
이밖에 연가시처럼 숙주의 생각까지 조종하는 무서운 기생충으로 ‘케르카리아(cercaria)’가 있다. 정확히는 란셋흡충(Dicrocoelium dendriticum)이라는 디스토마의 한 종류로, 성충은 양이나 소에 기생한다. 포유류에 기생하는 많은 기생충처럼 란셋흡충도 곤충을 중간숙주로 삼는다.
란셋흡충의 알은 감염된 소나 양의 배설물에 섞여 나온다. 이 알이 흙 속에 섞여 달팽이에 먹히면 달팽이 몸속에서 부화한다. 달팽이는 몸속에 사는 유충인 케르카리아를 점액질로 둘러싸서 몸 밖으로 쫓아낸다. 여기까지만 보면 케르카리아가 달팽이에게 대책 없이 퇴치당한 것으로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추진력을 얻기 위해 웅크리는 과정일 뿐이다. 케르카리아가 잔뜩 들어찬 점액덩어리는 개미가 먹어치우고, 개미의 몸속으로 들어간 케르카리아들은 무럭무럭 자라서 성체가 될 채비를 마친다.
특이하게도 한 마리의 케르카리아만은 다른 것들과 다르게 식도 아래의 신경중추로 이동해서 개미를 말 그대로 ‘조종’한다. 이 한 마리의 영향으로 개미는 저녁마다 집단을 빠져나가 풀 꼭대기에 올라가서 새벽이 될 때까지 꼼짝 않고 기다린다. 소나 양과 같은 동물들이 밤참을 즐기다가 케르카리아에 감염된 개미까지 덥썩 베어 물면 개미를 조종하던 한 마리는 죽고 나머지 유충들은 무사히 숙주의 몸속으로 들어가 성장한다.
●사람에게도 연가시 감염이 가능할까?
물론 현실에서는 연가시나 케르카리아가 사람 생각과 행동을 조종하는 일은 없다. 기생충들이 생물의 몸속이라는 매우 특수한 환경에 적응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앞으로도 곤충을 숙주로 삼는 기생충이 포유류에게 기생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연가시와 비슷하게 생긴 기생충이 사람에게 기생하는 일은 있다.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에 만연하는 병 중 ‘기니아충병’이라는 것이 있다. 이름 그대로 기니에서 많이 발견되는 질병으로 ‘메디나충병’이라고도 한다. 이 병은 ‘메디나충(Dracunculus medinensis)이라는 기생충이 일으키는 질병으로, 고대 이집트의 미라에서 발견되고 성서에 ‘불뱀’이라는 이름으로 언급될 정도로 역사가 길다.
연가시보다 조금 더 긴 모양의 메디나충은 유충 시절을 물속에서 보내다가 사람이 물을 마시면 몸속에 들어가서 기생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유충이 피부를 뚫고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때문에 이 병이 유행하는 동안은 학교들이 몇 달을 쉴 정도로 공포의 대상이다.
인간의 몸속에 침투한 메디나충은 피하조직으로 들어가 꿈틀꿈틀 움직이며 주변의 조직으로부터 양분을 얻는다. 다 자라면 50~80cm나 되는 기생충들이 피부 속을 헤집으며 기어 다니니, 감염된 사람으로서는 미칠 노릇이라고 한다. 메디나충은 사람의 몸속에서 교미를 한 후 알을 밴 암컷이 발목 쪽으로 내려와서 다시 물속으로 나갈 채비를 한다. 암컷이 수정한 후 1년 정도가 지나면 환자의 다리는 걷지 못할 정도로 퉁퉁 부어오르며 가렵고 따가운 수포가 생긴다. 수포가 생긴 부분에는 작열감이 아주 강한데, 이를 식히려고 물속에 발을 담그면 수포가 터지면서 알주머니가 나오는 것이다.
뇌를 조종하지는 않지만 메디나충으로 인한 고통은 상당하다. 일단 몸속에 침투한 메디나충은 피하조직 깊숙이 파고들기 때문에 구충제도 듣지 않는다. 때문에 메디나충이 피부 가까이에 있을 때 칼로 째서 막대에 감아 천천히 꺼내는 방법밖에 없다고 한다. 1m쯤이나 되는 것들을 하루에 2~3cm씩 감질나게 빼내니 완전히 뽑아내는 데도 한달이나 걸린다. 이 과정에서 겪는 고통도 엄청나서 기절하는 환자도 있다고 한다. 다행히 기생충학자들의 노력으로 피해가 많이 줄기는 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메디나충병이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기생충은 생물의 몸속에서 생활하는 탓에 기괴하고 나약해 보일지 모르지만 실은 엄청나게 진화한 생물에 해당한다.
살아있는 생물의 몸속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수많은 효소와 화학적 방어체계를 뚫어야 하고, 침투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숙주의 면역체계를 회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숙주의 몸속에서 생활하므로 실제 생활사를 관찰하기도 쉽지 않은 탓에, 기생충에 대한 연구도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이런 이유로 기생충의 모티브가 연가시나 에일리언과 같은 공포영화에 자주 등장하는지 모른다. 미지의 대상일수록 경이롭고 무서운 법이니까.
김택원 기자 twkim@donga.com
[KISTI의 과학향기]
2012년 07월 30일
언제부터인가 공포영화의 소재가 초자연적인 존재에서 ‘있을 법한 생물’로 옮겨가고 있다. 여기에 그럴싸한 과학적 근거도 붙어 공포감은 한껏 고조된다. 한강의 ‘괴물’은 몰래 폐기한 화학약품 때문이고, ‘좀비’는 바이러스나 기생충에 감염됐기 때문이란 것이다.
이러한 트렌드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것이 ‘기생충’이다. 기생충은 숙주의 몸을 빌어 번식하는 생물인데, 다른 생물을 먹이로 하지만, 먹이의 몸 속에서 살아야하기 때문에 기생충은 포식자이면서도 먹이를 가급적 살려두는 이상한 생물체다. 그래서 기생충에 감염되더라도 겉으로는 별다른 점이 보이지 않는다. ‘멀쩡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몸속에는 무서운 생물이 있더라’ 라는 식으로, 익숙한 일상이 공포로 변하는 장치로는 충분하다.
올해 7월 초 개봉한 영화 ‘연가시’는 이런 공식에 충실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기생충은 실존하는 기생충의 변종이라는 설정에, 연가시에 현실감을 부여하기 위해 감염과 전파 과정에 초점을 맞추기도 했다. 실제 제약회사와 구충제가 실명으로 등장해 영화 개봉 후 영화 속 구충제를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후문이다.
●곤충을 좀비로 만드는 무서운 기생충들
연가시는 유선형동물문 연가시강에 속한 동물로 산 속의 맑은 물가에 떠다닌다. 은빛 양파 뿌리처럼 생겨서 실뱀, 철사벌레로 불리고, 영어로는 ‘말털(Horsehair)’이라고 부른다. 몸에 눈이나 숨구멍, 하다못해 플라나리아에게도 있는 안점(眼點)조차 없어서 얼핏 생물인지 무생물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자극에 대한 반응도 워낙 느려 손에 닿더라도 꿈틀대지 않는다.
물속에서는 이렇게 얌전해 보이지만 곤충의 몸속으로 들어가면 난폭해진다. 물속의 연가시 성충이 낳은 알은 물가로 온 곤충들의 몸속으로 들어가서 부화한다. 깨어난 애벌레는 숙주의 내장을 차근차근 먹어치우고 10~15cm 정도가 될 때까지 자라서 내장 대신 배 속을 빽빽하게 채운다.
경우에 따라서는 1m가 넘게 자라는 경우도 있을 정도니, 연가시가 자랄 대로 자라면 곤충은 말 그대로 껍데기밖에 남지 않을 정도다. 연가시의 주요 숙주 중 하나인 메뚜기의 배 길이가 3~4cm도 채 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공포 그 자체다.
텅 빈 뱃속을 기생충이 꽉 채웠다는 것만으로도 공포스러운데, 연가시는 숙주의 행동을 조종하기도 한다. 연가시는 공기 중에 노출되면 얼마 살지 못하기 때문에, 숙주의 몸속에서 자란 연가시가 번식하려면 가급적 빨리 물속에 들어가야 한다. 연가시는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해 숙주가 스스로 물에 빠져 죽도록 조종하며, 이때다 싶으면 숙주의 배를 찢고 물속으로 튀어나온다.
이처럼 무시무시한 생활사 덕분에 연가시는 대표적인 혐오곤충 중 하나인 ‘꼽등이’와 엮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지와는 다르게 연가시는 1급수에서만 사는 청정 생물이다. 사체나 썩은 유기물을 주로 먹는 꼽등이와는 상종할 일이 별로 없다. 영화에서 연가시가 1급수가 아닌 한강으로 풀려나오는 설정은 영화 속 '옥의 티' 중 하나다.

이밖에 연가시처럼 숙주의 생각까지 조종하는 무서운 기생충으로 ‘케르카리아(cercaria)’가 있다. 정확히는 란셋흡충(Dicrocoelium dendriticum)이라는 디스토마의 한 종류로, 성충은 양이나 소에 기생한다. 포유류에 기생하는 많은 기생충처럼 란셋흡충도 곤충을 중간숙주로 삼는다.
란셋흡충의 알은 감염된 소나 양의 배설물에 섞여 나온다. 이 알이 흙 속에 섞여 달팽이에 먹히면 달팽이 몸속에서 부화한다. 달팽이는 몸속에 사는 유충인 케르카리아를 점액질로 둘러싸서 몸 밖으로 쫓아낸다. 여기까지만 보면 케르카리아가 달팽이에게 대책 없이 퇴치당한 것으로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추진력을 얻기 위해 웅크리는 과정일 뿐이다. 케르카리아가 잔뜩 들어찬 점액덩어리는 개미가 먹어치우고, 개미의 몸속으로 들어간 케르카리아들은 무럭무럭 자라서 성체가 될 채비를 마친다.
특이하게도 한 마리의 케르카리아만은 다른 것들과 다르게 식도 아래의 신경중추로 이동해서 개미를 말 그대로 ‘조종’한다. 이 한 마리의 영향으로 개미는 저녁마다 집단을 빠져나가 풀 꼭대기에 올라가서 새벽이 될 때까지 꼼짝 않고 기다린다. 소나 양과 같은 동물들이 밤참을 즐기다가 케르카리아에 감염된 개미까지 덥썩 베어 물면 개미를 조종하던 한 마리는 죽고 나머지 유충들은 무사히 숙주의 몸속으로 들어가 성장한다.
●사람에게도 연가시 감염이 가능할까?
물론 현실에서는 연가시나 케르카리아가 사람 생각과 행동을 조종하는 일은 없다. 기생충들이 생물의 몸속이라는 매우 특수한 환경에 적응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앞으로도 곤충을 숙주로 삼는 기생충이 포유류에게 기생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연가시와 비슷하게 생긴 기생충이 사람에게 기생하는 일은 있다.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에 만연하는 병 중 ‘기니아충병’이라는 것이 있다. 이름 그대로 기니에서 많이 발견되는 질병으로 ‘메디나충병’이라고도 한다. 이 병은 ‘메디나충(Dracunculus medinensis)이라는 기생충이 일으키는 질병으로, 고대 이집트의 미라에서 발견되고 성서에 ‘불뱀’이라는 이름으로 언급될 정도로 역사가 길다.
연가시보다 조금 더 긴 모양의 메디나충은 유충 시절을 물속에서 보내다가 사람이 물을 마시면 몸속에 들어가서 기생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유충이 피부를 뚫고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때문에 이 병이 유행하는 동안은 학교들이 몇 달을 쉴 정도로 공포의 대상이다.
인간의 몸속에 침투한 메디나충은 피하조직으로 들어가 꿈틀꿈틀 움직이며 주변의 조직으로부터 양분을 얻는다. 다 자라면 50~80cm나 되는 기생충들이 피부 속을 헤집으며 기어 다니니, 감염된 사람으로서는 미칠 노릇이라고 한다. 메디나충은 사람의 몸속에서 교미를 한 후 알을 밴 암컷이 발목 쪽으로 내려와서 다시 물속으로 나갈 채비를 한다. 암컷이 수정한 후 1년 정도가 지나면 환자의 다리는 걷지 못할 정도로 퉁퉁 부어오르며 가렵고 따가운 수포가 생긴다. 수포가 생긴 부분에는 작열감이 아주 강한데, 이를 식히려고 물속에 발을 담그면 수포가 터지면서 알주머니가 나오는 것이다.
뇌를 조종하지는 않지만 메디나충으로 인한 고통은 상당하다. 일단 몸속에 침투한 메디나충은 피하조직 깊숙이 파고들기 때문에 구충제도 듣지 않는다. 때문에 메디나충이 피부 가까이에 있을 때 칼로 째서 막대에 감아 천천히 꺼내는 방법밖에 없다고 한다. 1m쯤이나 되는 것들을 하루에 2~3cm씩 감질나게 빼내니 완전히 뽑아내는 데도 한달이나 걸린다. 이 과정에서 겪는 고통도 엄청나서 기절하는 환자도 있다고 한다. 다행히 기생충학자들의 노력으로 피해가 많이 줄기는 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메디나충병이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기생충은 생물의 몸속에서 생활하는 탓에 기괴하고 나약해 보일지 모르지만 실은 엄청나게 진화한 생물에 해당한다.
살아있는 생물의 몸속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수많은 효소와 화학적 방어체계를 뚫어야 하고, 침투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숙주의 면역체계를 회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숙주의 몸속에서 생활하므로 실제 생활사를 관찰하기도 쉽지 않은 탓에, 기생충에 대한 연구도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이런 이유로 기생충의 모티브가 연가시나 에일리언과 같은 공포영화에 자주 등장하는지 모른다. 미지의 대상일수록 경이롭고 무서운 법이니까.
김택원 기자 twkim@donga.com
Subscribe to:
Posts (At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