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제민기자 jeje17@kyunghyang.com
ㆍ백영경 KAIST 교수 논문서 지적
한국 사회는 매년 한 차례 인구 위기론에 휩싸인다. 언젠가부터 유엔이 매년 발표하는 인구통계에서 한국의 출산율이 최하위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 보도는 예외없이 몇 년부터는 인구가 줄어들고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것이라는 위기론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인구 위기론은 근원적 해결책으로 이어지지 않고, 대신 다른 수단을 이용해 출산율을 높이려는 시도만 만개한다. 가령 이민자를 받아서 인구 위기를 타개하자든지, 불임시술 장려나 낙태 금지를 통해 저출산에 대응하자는 식의 단기적 처방이다. 백영경 KAIST 교수(인류학)가 한국학 영문학술지 ‘코리아 저널(Korea Journal)’ 2009년 가을호에 게재한 논문은 이러한 인구 위기론이 불임시술 장려, 나아가 생명윤리에 대한 경시로 이어지는 한국적 맥락을 잘 보여준다.
백 교수에 따르면 한국은 생명윤리의 측면에서 특이한 나라다. 2005년 황우석 사태와 그 이후 생명윤리 관련 법을 입법하는 과정에서 잘 나타났듯 여성 난자의 사용에 대한 규제가 약하다. 또한 미국 등 선진국과 달리 인공수정이나 시험관 아기 이슈에 대해 ‘아기 판매’ 대(對) ‘불임부부의 고통’의 경합이 일어나지 않는다. ‘불임부부의 고통’만 부각된다.
백 교수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가적으로 형성된 경제 및 인구 위기론에서 원인을 찾는다. 국가간 경쟁에서 경제적으로 뒤처질 것이라는 위기감 속에 신성장 동력으로 주목받은 것이 줄기세포 연구로 대표되는 생명공학이고, 인구적으로 국가 존망의 위기라는 분위기 속에서 인공수정에 의한 출산율 제고가 조명 받았다. 두 위기의 묘한 결합 지점은 여성의 난자이다.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보다 위기의 극복이 중요했다.
여기서 발견된 중요 대상이 불임부부였다. 2006년 보건복지부의 저출산 대책 예산의 82%가 인공수정 관련 항목에 할애됐다는 것은 시사적이다. 불임부부에 초점을 맞추는 정책은 뒤집어 보면 아기를 낳지 않는 사람들이 국가적 위기의 근원이고, 출산 가정에 주어지는 세제 혜택 등 각종 혜택에서 소외된다는 것을 뜻한다. 불임부부들은 국가가 불임 문제와 관련, ‘개인적인 불운’을 ‘사회적 문제’로 전환하고 있다고 믿으며 안도한다. 그 와중에 유린당하는 것은 여성의 몸이라는 것이 백 교수 논리다.
하지만 백 교수의 이런 주장은 불임부부의 아기 가질 인권을 도외시하는 것이라며 매도당한다. 이에 대해 백 교수는 불임부부들을 인터뷰하며 국가적 위기 담론이 여성의 몸을 얼마나 유린하는지 보여줬다. 가령 10년 동안 인공수정을 시도하다 몸이 만신창이가 됐음에도 아기를 갖지 못해 이제는 대리모를 찾는 여성의 사례가 나온다. 불임을 병으로 취급하는 현대의학이 불임문제를 언제나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은 국가적인 위기론 속에 종종 잊혀진다는 것이다.
한국의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한국이 아기를 낳아서 인간답게 기르기 힘든 사회라는 저출산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기보다 개인의 몸을 규율해서라도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는 기본 인식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인식 뒤에는 언제나 장기적인 대응보다 시급한 대책을 더 강조하는 위기론이 있다.
<손제민기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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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Novembe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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