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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June 2011

[과학세상/김경진]한국뇌연구원 설립 하루가 급한데…

2011년 06월 01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입지가 우여곡절 끝에 선정됐다. 우리나라 과학수준을 한 단계 도약시킬 것으로 평가되는 과학계 숙원사업이 마침내 첫발을 내딛게 됐다는 점에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뇌과학 분야 연구자 시각에서는 지난 2년여 동안 국가 차원의 ‘뇌연구 기지’라고 할 수 있는 한국뇌연구원 설립이 추진돼 왔음에도 여론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해 안타깝다. 2009년 말 입지 선정을 마치고 2012년 하반기에 건물을 준공해 2013년 초 개원을 목표로 하는 정부 로드맵의 설립 추진 일정이 상당히 미뤄졌다.

조만간 뇌연구원 입지가 최종 선정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처럼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한국뇌연구원 설립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뇌연구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고 국가 차원의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한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 확보를 목표로 2008년부터 추진돼 왔다.

현대과학이 ‘작은 우주’로 불리는 뇌의 비밀을 풀고 이해하는 데 상당한 진전을 이루고 있지만 블랙박스로 여겨지는 뇌기능에 대한 많은 부분은 여전히 신비로운 상태에 머물러 있다. 뇌과학이 21세기 첨단과학의 최전선이자 인류 최후의 프런티어 영역으로 꼽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학습과 기억, 뇌 인지 기능, 신경세포의 손상 소멸 메커니즘, 치매 우울증 뇌중풍(뇌졸중) 파킨슨병 등 각종 뇌질환의 병인 규명과 치료, 뇌와 기계의 접속, 나아가 인공지능과 로봇 등에 이르기까지 뇌에 대한 연구와 그 융합, 응용 분야는 실로 다양하다.

뇌연구는 국가 차원의 집중적인 R&D 투자가 이뤄질 경우 세계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미래 원천기술을 조기에 확보할 수 있어 차세대 신성장동력으로 각광받고 있다. 게다가 바이오기술(BT) 정보기술(IT) 나노기술(NT) 등 첨단과학 분야 융합연구에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초, 원천기술을 확보하게 된다는 점에서 과학기술 분야 국격(國格) 상승에도 기여하게 된다.

선진 각국은 20세기 말부터 발 빠른 행보를 보여 왔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각각 ‘뇌 연구 10년’ 프로젝트와 ‘유럽 뇌연구 10년’ 법안 제정 등을 통해 뇌과학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도 20년간 뇌연구에만 매년 1조5000억 원이 넘는 연구비를 투입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도 1998년 ‘뇌연구 촉진법’ 제정을 계기로 뇌과학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정부의 21세기 프런티어 R&D 사업의 일환으로 2003년 출범해 2013년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뇌기능 활용 및 뇌질환 치료 기술개발 연구사업단’의 경우 뇌에 특이적으로 존재하는 유용 유전자를 다수 발굴해 뇌기능을 밝히고, 신약 후보물질의 기능을 점검하고, 뇌연구 핵심 기반기술인 ‘뉴로 툴’을 개발하는 등 국내 뇌과학 연구의 초석을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뇌연구에 대한 R&D 투자 대비 연구성과가 미미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뇌연구 같은 융합과학의 특성상 단기에 성과를 창출하지 못할 수도 있고 실패 위험 또한 높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뇌연구원은 설립에 그쳐서는 안 되고 세계적 수준의 내실 있는 운영이 절실히 요구된다. 특히 국내 뇌연구 능력을 선진국 수준으로 도약시키려면 장기적인 안목으로 지금까지보다 10배 이상 더 많은 R&D 예산을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나라가 인류 최후의 도전이자 21세기의 블루오션인 뇌연구의 경쟁 대열에서 선두에 설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경진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뇌기능 연구 프론티어 사업단장

28 January 2011

나의 (유학기 아닌) 유학기

2001년 09월 19일

이 글의 제목을 "유학기 아닌 유학기"로 붙인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외국 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있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나는 유학 경험이 없다. 1987년에 유학을 준비했지만, 집안 사정상 곧 그만두었다. 대신 1988년 국내 박사과정에 진학해서 90년에 수료를 하고, 몇 개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강의를 하면서 논문 주제를 생각하고 있던 차에 당시 지도교수님이 외국에 나가서 외국 교수의 지도하에 영어로 논문을 쓸 것을 생각해보라고 권했고, 나도 한국에서 적당히 논문 써서 학위 받고 폼이나 잡는 그런 사람이 되긴 싫어서, 그러겠다고 했었다.

이런 저런 조건을 생각하고, 몇 사람을 접촉한 다음에 토론토 대학의 부크왈드(J.Z. Buchwald)교수가 논문을 지도해 주겠다는 승낙을 받았다. 1991년 2월 24일 토론토 땅을 밟았다. 내 비자는 1992년 12월로 그 기간이 2년 남짓되었었다. 2년안에 논문을 쓰고 한국에 돌아간다는 야심찬 계획을 안고 왔다. 유학생이 아닌 방문학생의 자격이었다. 그런데 당장 세상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유학 아닌 유학을 가다
내가 부크왈드 교수를 지도교수로 택했다는 얘기를 듣고 지금 과기대에 있는 K선배가 극구 말렸던 기억이 난다. 그 사람은 너무 젊고 야심만만해서, 너 같은 방문학생한테는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토론토대학 과학사학과에 와 보니, 그의 얘기가 농담이 아니었다. 그는 연구 업적이 좋아서 토론토대학에 재직했던 18년 중 10년 가까이를 (연구)휴가로 보냈던 사람이었고, 18년간 단 두 명의 박사 학생을 가르쳤을 정도로 학생 선발에 까다로웠고, 또 학생을 받는데 별로 관심도 없었다. 토마스 쿤(Thomas Kuhn)의 애제자였고, 하버드에서 과학사 석박사를 삼 년 반만에 마치곤 26에 토론토대학에 교수로 부임했을 정도로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었던 사람이었다.

내가 겪은 첫 문제는 영어였다. 말은 고사하고 들리지도 않았다. 리포트를 써내야 했는데, 영문 타자도 칠 줄 모르는 형편이었다. 그는 내게 바로 논문을 쓰기 시작하라고 했고, 2주일에 하나씩 짧은 리포트를 내라고 요청했다. 영작을 못하는 것은 물론, 타자도 못치는 사람한테 리포트를 내라니! 말을 잘 못하니, 사정을 하소연할 수도, 한국에서처럼 적당히 둘러대고 빠져나갈 수도 없었다. 시키는 대로해야 했다. 논문의 챕터를 6개로 잡고, 각 챕터에 4-6개의 섹션을 잡아보았다. 그리고 섹션 하나씩을 말도 안 되는 영어로 쓰기 시작했다.

우리는 수요일 아침에 격주로 만났는데, 월요일에 보고서를 그의 mailbox에 넣어놓아야 했다. 내가 2주 동안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해서 보고서를 준비해도, 그는 문제점을 찾아내고, 토론시간에 나를 질타했다. 그는 의기양양했고, 나는 토론이 끝나고 학교를 나올 참이면 참담했다. 그런데 조금 쉴 여유도 없었다. 다음주 보고서를 또 시작해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3페이지였던 내 보고서는 시간이 갈수록 두툼해졌다. 나중에는 15페이지, 20페이지 짜리 보고서를 격주로 내곤 했다. 그래도 비판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비판은 날카로운 비수처럼 예리했고, 99% 정확했다. (나는 딱 한 번 그의 비판이 정확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칭찬을 받아본 기억은 거의 없다. 내 보고서를 놓고 토론하면서, 어느 순간 그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고 "very interesting, very interesting..."이라는 낮은 감탄사가 나오면, 나는 그것이 그가 학생에게 해 주는 최고의 칭찬임을 새겨들어야 했다.

부크왈드교수는 다정다감한 선생이 아니었다. 내 논문이 끝날 때까지 내게 웃어준 적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는 어떤 일에 한번 몰두하면 방해받기를 싫어해서, 나는 연구실 밖에서 그가 일을 마칠 때까지 한없이 기다린 적도 종종 있었다. 그는 92년 8월에 MIT의 석좌교수가 돼서 토론토를 떠났는데, 91년 3월부터 92년 8월까지 약 1년 5개월간의 기간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를 가장 지적으로 자극했던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건방진 얘기지만, 그제야 나는 학문을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았다. "세계적인 학자"의 벽이, 그 수준이 어떤 것인지 처음 알았다. 장난이 아니었다. 그 사고의 깊이, 비판의 정확성, 분석의 예리함, 박식한 지식, 표현의 유창함... 이 모든 것은 나를 한없이 초라해 지게 만들기 충분했다.

나는 그와 조금 친해지고서 그에게 이런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너를 만족시키기가 너무 힘들다고. 그는 웃으면서 이렇게 얘기했던 것 같다. "나는 네가 뛰어넘어야 할 벽이다. 네가 알다시피 나라는 벽은 상당히 높고, 뛰어넘기 힘들다. 그런데, 너는 이점을 알아두어야 할 것 같다. 네가 나를 뛰어넘으면, 그 다음에 넘어야 할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을. 나를 만족시키면, 다른 사람들은 자동으로 만족시키는 것이다."

무협지에 보면 고수를 스승으로 모시고 깊은 산중에서 무술을 닦은 청년이 처음으로 강호에 나가 자신의 실력에 깜짝 놀라듯이,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캐나다에 온지 1년만에 IEEE Electrical History Fellowship이라는 경쟁이 세고 권위 있는 미국 장학금에 응모했는데, 이를 덜컥 받게되었다. 생각도 못하던 일이었다. 당시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웠는데 천문학적인 돈 미화 ,000을 움켜쥐었으니 얼마나 기뻤겠는가. 그런데 이는 내 크레딧(credit)덕분은 아니었다. 연구 계획서를 냈지만, 무엇보다 나를 주의 깊게 보고 있었던 부크왈드 교수의 추천서가 강력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부크왈트 교수도 내 자신도 깜짝 놀랐던 일이 하나 생겼다. 한국이라는 인문학의 불모지에서 온 영어도 잘 못하는 학생이 92년 미국 과학사학회에서 수여하는 슈만 상(Schuman Prize)을 받은 것이다. 이 상 하나로 나는 졸지에 star가 되었다.

아이덴티티의 위기와 슈만 상
슈만 프라이즈(Schuman Prize)는 미국 과학사학회에서 박사과정 학생을 대상으로 논문을 공모, 심사해서 매년 최우수논문 한 편에 수여하는 상이다. 역사가 꽤 오래되었고, 외국인은 영국학생이 두어 번 상을 탄 것이 전부였다. 이 상은 프린스턴, 예일, 하버드와 같은 미국 명문대학의 박사과정학생들이 독점하고 있었다. 내가 머물고 있었던 토론토대학 과학사학과는 당시 25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었으나, 아직 슈만 상을 탄 학생을 내지 못한 형편이었다.

1992년 초 내가 슈만 상에 응모해야겠다고 결심했을 무렵, 나는 크레딧의 위기(crisis in credit), 아이덴티티의 위기(identity crisis), 그리고 경제적인 위기(economic crisis)라는 일련의 위기를 겪던 중이었다. 이 셋은 물고 물리면서 연관되어 있었고, 나를 지치게 하고 진을 쑥 빼놓기에 충분했다.

한국에 있을 때 서울대 박사과정에 있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고 하면 어디 가서 대접은 못 받아도 천대는 받지 않을 정도의 지적, 사회적 크레딧은 가지고 있었다. 나름대로 진보적인 사회운동에도 참여하고 있었고, 원고 청탁도 심심지 않게 들어왔으며, 강연요청도 꽤 있었다. 강사료와 이런 잡수입으로 결혼 뒤에도 근근히 생활을 할 정도는 됐다. 학술지에 논문을 세 편 출판했을 정도로, 연구에도 게으름을 피지 않았었다.

토론토에 발을 디디면서 이 모든 것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내가 한국에서 쌓았던 크레딧이 -- 박사과정 수료, 괜찮은 평가, 논문, 사회운동 등 --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내게 하는 질문은 "너도 한국에 있을 때 데모했니?"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나를 과대 평가해 주길 바라긴커녕, 내가 한국에서 이룬 것만이라도 제대로 평가해 주길 바랬지만 소용없었다. 한국의 학계가, 특히 인문사회과학이 너무 국내에서만 자족했던 그 대가를 유학생들 개개인이 겪는 셈이었다.

여기에 아이덴티티의 위기가 가세했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내 이름을 부르질 못했다. 내가 "나는 '성욱'(Sungook)이다"고 하면 '성욱'을 알아듣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뭐? (Pardon me? I'm sorry?)"를 두세 번은 들어야 했고, 그러고도 '성욱'을 발음하는 경우가 없었다. "썬국"이 보통이었고, "덷윽" "썽국" 등 가지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외우기도 쉽고 부르기도 쉬운 성을 따서 나를 그냥 "홍(Hong)"이라고 부르라고 했는데, 이는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문제를 낳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성(last name, family name)은 군대에서나, 또는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에 경멸조로나 부른다는 것이었다. 이를 알고 이름을 다시 "성욱"으로 바꾸는데, 1년 이상 걸렸다.

예상치 않던 사건은 항상 생기는 법이지만, 그것이 타국에서 생겼을 경우 그 충격은 더 심했다. 우리 부부는 유학 첫 해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다. 당시 학교에서 가까운 허름한 아파트에 살았는데, 난방이 잘 안돼서 겨울을 너무 춥게 보냈던 생각이 난다. 돈을 절약하고 또 절약할 때라서, 1불 50센트 하는 피자를 한 조각 사와서, 나와 내 처가 갈라 먹는 게 가장 흐뭇한 시간이었다.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서 큰 수퍼마켓에서 유효기간이 지난 음식을 싸게 파는 것을 사서 먹었던 경험도 지금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이런 와중에 나는 "어떻게 북미에서 내 크레딧을 쌓을 수 있을까"라는 숙제를 풀어야 했다. 내 크레딧은 제로 상태였다. 그렇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이, 크레딧을 쌓는 것은 다른 학생들과의 경쟁이었고, 이미 다른 학생들이 +(플러스) 크레딧을 가진 상태에서 보통 방법으로 경쟁을 하면, 부익부 빈익빈의 원칙에 따라 내가 그들을 따라 잡기란 불가능했다. 나로서는 뭔가 혁신이, 도약이 필요했다. 이때 1992년 슈만 상 공고를 보고 "그래, 바로 이거야!"라고 무릎을 쳤다. (이건 다른 얘기인데, 이런 경험 이후 크레딧(credit) 또는 크레더빌리티(credibility)란 개념은 내 과학사 연구에서 상당히 중요한 개념이 되었다. 내가 영문으로 출판한 논문 중엔 "Styles and Credit in Early Radio Engineering"란 논문도 있고 "Syntony and Credibility"란 논문도 있다).

마감은 5월말이었고, 시간은 별로 없었다. 일단 내가 썼던 학위논문 중에 지도교수의 칭찬을 들었던 2 섹션을 뽑아서 논문으로 만들었다.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출판을 위해 쓴 논문인데 읽고 영어를 고쳐달라고 부탁했고, 서울에 있는 지도교수에게만 한 부 보내면서 슈만 상에 응모할 논문이라고 귀띔했다. 서울에서 날아온 충고는 "슈만상은 경쟁이 워낙 세니까, 너무 시간 많이 쓰지 말라"는 약간은 부정적인 것이었다.

간신히 5월말에 맞춰서 응모를 하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6월말 경에 심사위원회 위원장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나는 "혹시, 내가..."라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편지를 열어보았는데, 서울대학교란 대학을 들어보지 못했다고, 내게 거기 박사과정에 재학중이라는 증명서를 첨부해서 보내라는 내용의 편지였다. 기가 턱하니 막혔다. 재학증명서를 팩스로 받아 한부 보내주는 수밖에 없었다.

10월이 지나도 연락이 없자 떨어진 줄 알고 있었다. 혹시나 하고 기다렸는데 맥이 빠졌다. 그러다 11월 중순의 어느 금요일 오후에 학교에 들렸다가 웬 편지가 한 통 와있는 것을 보았다. 수신인을 보니까, 미국과학사학회였다. "휴.. 또 회비 내라는 편지구나.."라고 생각하고, 편지를 뜯어서 첫 줄을 읽는데, 갑자기 멍해진 채로 그 다음 줄이 눈에 들어오질 않는게 아닌가. "Dear Sungook Hong: I am very pleased to inform you that your essay... has been awarded the Schuman Prize. This prize is open to graduate students ..."

"이야!" 환희의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연구실에 남아있던 학생들을 일일이 붙잡고 편지를 보여주고, 악수도 하고 포옹도 했다. 교수들 연구실을 두드려서, 남아있는 교수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저녁 6시에 처를 도서관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어떻게 하면 제일 놀라게 할까 궁리를 했다. 음...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참 내, 오늘 정말 이상한 날이야. 글세 학교에 가보니 이런 이상한 편지가 와있잖아. 한 번 읽어 볼래?"라고 하면서 그녀에게 편지를 건네는 방법을 생각했다. 나는 정말로 이렇게 했고, 처를 놀라게 한 대신 길에서 몇 대 맞았다.

수상식은 12월에 있었던 미국 과학사학회에서 있었다. 500명의 회원이 모인 연회장에서, 사람들을 내려다 보는 테이블(high table)에서 뭐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지도 모르게 밥을 먹고, 내 차례가 돼서 상을 받고, 간단한 소감을 말했다. 영어에 자신이 없어서 100번은 더 넘게 외우고, 화장실에서도 연습을 했던 짧은 소감이었다.

학생으로서 나는 훌륭한 선생 두 분을 둔 행운을 누렸다. 한 분은 서울대학교의 김교수인데, 그는 물리학도였던 내게 역사학자로서 읽고, 생각하고, 쓰는 법을 가르쳐주셨다. 다른 분은 부크왈트 교수인데, 그는 사고와 글에서 -- 내가 달성하지 못했지만 -- 항상 최고의 수준을 요구함으로써 나를 자극했다. 나는 이분들에게 감사한다.

영어와 수업에 대한 기억들
내가 서울서 대학과 대학원에 다니던 80년대는 반미감정이 몹시 격앙된 시절이었다. 미국이 한반도 분단의 주범이라는 일반론에, 미국이 광주사태를 용인하고 전두환 정권을 지지했다는 당시의 상황 인식이 겹쳐서, 골수 운동권이 아니더라도 "미제국주의"란 얘기가 낯설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서울 미문화원 점거, 부산 미문화원 방화가 다 이때 일이었다. 외국인 선생에게 영어회화를 배우러 다니는 것은 유학을 준비하는 출세지향적인(?) 학생이나 조금 덜떨어진 애들이 하는 일로 치부하던 시절이었다.

영어 공부를 하나도 안 하다가 나이 서른이 넘어서 캐나다에 도착하고 나니, 공항에 입국수속부터 식은땀이 흐르고 눈앞이 아찔아찔했다. 읽기는 어느 정도 했는데, 듣기와 말하기는 젬병이었다. 영어 때문에 고생한 에피소드에 대해선 책을 한 권을 써도 모자라지 않을 것이다.

한가지 예를 얘기해 보자. 이곳에서 신문을 사면 광고지(flyer)들이 잔뜩 들어있는데, 그 광고지에서 "문을 부수는 (따는) 기구"를 대대적으로 선전함을 보고 의아했던 경험이 있다. '왜 <문을 부숴서 여는 장치>가 필요할까..'를 생각하다, '아마 사람들이 열쇠를 잃어버렸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 자동차 같은 데 이 기구를 가지고 다니나 보다'라고 짐작했었다. 하도 선전을 많이 하기에, '이렇게 선전을 많이 하는데 나도 하나 사야하지 않을까'라고까지 생각한 적도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는 "Door Crasher!!"를 엉뚱하게 해석한 것이었다. ("가격이 너무 싸서, 사람이 몰려 문이 부서지고 있습니다!! 떨어지기 전에 빨리 와서 사세요!!"라는 의미의 광고문구다.)

수업을 같이 듣던 학생이 하루는 내게 "너 이 수업 어떻게 찾았니"라고 물어보았다. 난감했다. '휴...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하나...' "음.. 그러니까... 역사과에 가서... 수업안내서를 봤는데... 거기서 재밌어 보이는걸 보고... 교수한테 가서.. 청강해도 되냐고 했더니... 교수가 그래도 된다고 해서... " 그랬더니 그 친구가 씩 웃으면서, "넌 내 질문을 글자 그대로 해석했구나"하는 것이 아닌가. 그가 물었던 "How do you find it?"은 그냥 "너 이 수업 어떻게 생각하니?" 정도의 얘기였는데, 이를 "어떻게 찾았니"로 해석했으니...

"How come?"(왜? 어떻게?)을 "어떻게 왔니?"로 해석해서 끙끙댄 적도 있고, "Go for it"이 의미전달이 안돼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를 물어본 적도 있었다. Zoo와 Jew를 구별해서 발음 못해서 "내일 동물원에 갈거다"는 얘기를 "내일 유태인에 갈거다"는 식으로 전달한 적도 있다 (z발음은 한글자음에 없다. 한가지 방법은 z이 롁보다 걁에 가깝다는 것을 이용하는 것이다. zoo를 "주-"보다는 "수-"로, reason을 "리즌"보다는 "리슨"으로 발음하는 게 알아듣기에 더 용이하다. reason을 리즌이라고 하면 region인줄 안다.) 한 번은 내 지도교수와 그의 연구에 대해 얘길 하다가 그가 내게 "너는 내 연구가 좋은 출판사에서 출판될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니? (Don't you think...?)"라고 물었는데, 한국식으로 "아니... No..."라고 했다가, 큰 오해를 살 뻔한 적도 있다.

말이 이랬으니, 세미나 수업에 참여하는 것은 고역이었다. 나는 방문학생이어서 수업을 들을 의무는 없었지만, 이곳에 2년 체류하는 동안 다양한 수업을 듣고 견문을 넓히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첫해에 "빅토리아 사회"에 대한 대학원 과목을 들었는데, 첫 4주 동안 세미나 시간에 단 한마디 얘기도 못했었다. 20분 가까이 한 학생이 발제를 하고 토론을 하는 것이었는데, 2시간 토론이 끝날 때까지 단 한 번의(!) 말할 기회도 잡을 수 없었다. 자괴심과 스트레스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 "한 세미나" 한다고 자부했던 내가, 정말 참담한 기분이었다.

작전을 짰다. 어차피 토론 중간에 틈을 비집고 들어가긴 힘든 거, 발제가 끝나고 교수가 "자 이제 시작해 보지"라고 운을 떼면, 그 때 재빨리 첫 화두를 잡는 식으로 말을 꺼내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는 유효했다. 무조건 첫 번째 얘기/코멘트/질문을 하는 식으로 첫 말을 꺼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2시간에 1-2분은 말하는 셈이 됐다. 이것만 해도 말을 못한다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엄청 줄었다. 나중에 한 학기가 다 갈 무렵에는 세미나 중간에도 한 두 번씩은 낄 수 있었다.

이것 가지곤 부족했다. 석사 2학년 수업이었는데, 내가 보기엔 별것도 아닌 애들이 "이빨" 하나로 폼잡는 것 같았다. 설욕의 기회를 얻어야 했다. 교수에게 간청을 해서, 세미나 발제를 한 학생과 공동으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학기 맨 마지막 세미나였다. 그 학생에게 접근해서, "네가 요약을 하라, 내가 질문을 만들게. 이런 식으로 역할을 나누자"고 했다. 그 학생이 20분 동안 책 한 권을 요약하고, 내가 5분 동안 토론주제에 대해 얘기를 하는 식이었다.

내게 주어진 기회는 단 5분이었다. 이 5분 동안, 그곳에 모인 학생들은 물론 교수를 탄복시키는 어떤 것을 만들어 내야 했다. 사람들이 "아!"하고 감탄할 수 있는 무엇을 만들어야 한다는 중압감이 나를 괴롭혔다. 책을 꼼꼼히 읽고, 큰 주제를 잡아내고, 저자의 주장을 분류하고, 이 주장에서 특히 독창적인 것을 끄집어내고, 문제점을 찾아내고, 이를 내가 읽은 다른 것과 비교하고, 이렇게 추려진 핵심을 중층적으로 엮고 또 엮어서, 토론 주제 5개를 만들어 냈다. 발제자의 발표가 끝나고, 내가 5개의 질문을 읽었다. 하나씩 읽을 때마다, 사람들의 분위기가 달라짐을 느꼈다.

질문을 다 던지고 나니, 방이 조용했다. 교수가 낮은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이 질문들 가지고 한 학기 수업을 해도 좋겠다." 성공이었다. 한 학기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단번에 풀리는 순간이었다. 이 발제 이후 그 교수로부터 추천서를 비롯한 다른 도움을 몇 번 받았다. 그때 같이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을 이후에도 캠퍼스에서 가끔 만나곤 했는데, 이들로부터 "네가 그때 했던 발제가 정말로 인상 깊었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내가 불과 3년 후에 토론토 대학의 교수가 됐다는 소식을 이 교수에게 전했을 때, 그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이후 나는 다른 수업을 들을 때에도, 내가 잘 할 수 있는 곳에서 (발제, 리포트 등)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애썼던 것 같다.

잠간 다른 얘기: 유학생들을 위한 한가지 충고
나는 지금은 교수의 입장에서 대학원생을 선발하는 일에 관여도 하기도 한다. 인문사회과학으로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한가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이곳 교수들이 외국학생의 (특히 동양학생의) 입학 지원서를 볼 때 그 학생이 영어를 잘하는가 못하는가를 먼저 본다는 것이다. 토플이나 GRE같은 점수 이외에는 이를 평가할 방법이 없으니, 이런 점수를 잘 받는 것이 (특히 학점이 좀 안 좋을 때) 중요하다.

이에 덧붙여서,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교수들과 친분을 쌓아두고, 이들로부터 추천서를 받는 방법도 고려해봄직하다. 특히 유학가면서 바로 TAship(조교 장학금) 등을 노리는 학생은,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으로부터 "이 학생은 TA로서 세미나 지도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영어 실력이 있다"는 애기가 담긴 추천서를 받아내면 무척 유리하다.

두 번째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유학을 와서 영어가 모국어인 학생들과 경쟁을 할 때 "잘 할 수 있는 곳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다. 한국 학생들은 고등학교 때 문법을 잘 익혔기 때문에, 말하기 보다 쓰기가 괜찮다. (한국 학생은 시험에도 강하다.) 세미나 시간에 20-30분 얘기하려고 기운빼기 보다는, 좋은 페이퍼를 쓰는데 총력을 다하라는 식이다.

페이퍼나 세미나 발제와 같은 것은 자기의 능력을 보일 수 있는 좋은 기회들이다. 이런 기회가 10번이고, 20번이고 오는 것이 아니다. "기회는 찬스다"(?)는 말처럼,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백분 이용하는 게 중요하다. 강한 인상을 동료학생과 특히 교수에게 심어 주어야 한다. 그저그런(dull)한 요약을 길게 하는 것 보다,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그 무엇"을 생각해내려고 애써봄직하다. 다른 학생들이 2만큼 준비한다면, 5, 아니 10만큼 준비하면 된다.

항상 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야심이 있는 학생이라면 지도교수는 그 분야에서 최고로 "잘 나가는" 사람을 택해보도록 하라. 연구의 첨단(research frontier)에 있는 사람 밑에서 한 3-5년 구르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내공이 엄청나게 는다. "식당개 3년이면 라면을 끓인다"는 얘기가 맞다. 이런 교수와 연구하다 보면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것이 어떤 작업이라는 감이 생긴다. 최고봉을 넘고 나면, 더 넘을 봉우리가 별로 없다. 반면에 남들이 만들어 놓은 지식의 뒷치닥거리를 하는 사람 밑에서 공부를 하면, 논문을 쓰고 졸업하기는 쉬울지 몰라도, 그 다음에도 첩첩산중이다. 잘못하다가는 자신의 실력이 어디에 와 있는지도 모르고 똥폼만 잡는 학자가 되기 딱 십상이다.

대게 유명한 교수들은 바쁘고, 학생 선발에 까다롭고, 그 밑에서 공부하겠다는 좋은 (서양) 학생도 많다. 자기가 원한다고 이런 지도교수를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럴 경우 수업을 들으면서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 더더욱 중요하다. 이런 교수가 "언제 한 번 만나서 얘기해보자"고 할 때는, 그것이 두 번 다시 돌아오기 힘든 기회임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관심과 연구 계획을 일단 글로 써서 딸딸 외우고, 교수의 예상 질문을 만들고, 이에 대한 자신의 답을 만들어서 외우고 갈 정도로 준비를 해야 한다. 강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좋은 기회를 놓친 셈이 된다.

케임브리지 여행과 서양에 남겠다는 결심
공부를 하다보면 다른 학자들의 글을 접하게되고, 이들과 편지를 (지금은 전자메일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연구에 대해 얘기하다가 친구가 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런 사람들 중엔, '나도 조금만 더 노력하면 이 정도는 되겠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태반이지만, '아, 나는 죽었다 다시 태어나도 이런 연구는 못할 것 같다'고 나를 초라해지게 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대학에서 교수를 하는 사람이라고 다 똑같은 학자가 아닌 것이다.

다시 무협소설 얘기를 하자면, 검객들이 몇합을 겨루어보면 상대가 고수인지 아닌지 금방 아는 얘기가 있듯이, 같은 분야를 전공하는 학자들 사이에도 이를 비교적 쉽게 알 수 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어떤 학자가 내 연구나 제 삼자의 연구에 대해 코멘트를 하는 것을 보고 그 사람의 학문적 사고의 깊이를 잰다. 조금 뻥을 치자면, 한 10분 얘기해보면 그 내공을 얼추 잴 수 있다. (이걸 아는 것도 내공이 쬐끔은 있어야 한다. 원래 하수들이 세상 넓은 줄 모르고 천방지축 까부는 것은 무협소설이나 학계나 비슷하다).

유명한 학자들 주변에는 전설적인 얘기가 많다. 93년 초,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 방문학생으로 한 학기 동안 머물렀던 이유는 그곳 과학사학과에 재직하는 새퍼(Schaffer)라는 교수와 함께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섀퍼는 1985년, 스트븐 새핀(Steven Shapin)이라는 과학사회학자와 <리바이어던과 진공펌프 (Leviathan and the Air-Pump)>라는 책을 출판한 사람이다. 다른 문제작들이 그렇듯이 이 책은 극찬과 혹평, 찬탄과 비난을 함께 받았고, 1980년대를 통해 과학학(science studies)분야의 최고 문제작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이 문제작을 출판했을 때 그의 나이가 불과 29이었다. 아니, 그는 학부 2학년이던 20살 때부터 전문 학술지에 논문을 내기 시작했고, 그가 24살 때 쓴 "자연철학"이라는 논문은 지금도 그 분야의 고전(classic)으로 간주된다. 그는 학부 수업을 하면서도 담배를 피는 유명한 골초이고, 한 번 본 것은 절대로 안 잊어버린다는 사진기와 같은 기억력으로 유명하다. 그는 남들이 1년에 한 편 쓰기도 힘든 연구 논문을, 그것도 수작으로, 1년에 서너편씩 계속 발표한다.

더 신기한 것은 그가 하루종일 도서관에서 책만 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낮에는 줄을 서서 그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저녁 4-5시부터 밤 늦게까지는 케임브리지의 이글(Eagle)이라는 맥주집에서 학생들과 함께 매일(!) 술을 마신다. 실제로 주량도 상당하다. 그를 만나려면 학교 연구실이 아니라 "이글"로 가면 된다는 말이 있는데, 나도 케임브리지에 있는 동안 이글에 자주 갔지만 갈 때마다 벌겋게 취해있는 그를 만나고 신기해하곤 했다.

92년 여름에 케임브리지를 잠간 방문하는 동안 섀퍼를 처음 만났었다. 내가 보내준 논문 잘 읽었다고 하면서, 당장 맥주 마시러 가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 오후 세시도 안된 시간이었는데 맥주를 금새 훌쩍 3 파인트 (1,500cc 정도) 마시는 것이 아닌가. 맥주를 마시면서, 내 논문에 대해 질문 비슷한 코멘트를 두 개 했는데, 나는 그 질문을 듣고 혼이 쑥 빠져버리는 기분이었다. 질문이 기가 막히게 예리해서, 그가 이미 내 논문을 한 번 읽고 이에 대해 저자인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새로운 지식을 흡인하는 위력에 내 골수가 다 빨려나간 기분이었다.

그 만남 이후 그에게 배우고 싶어 케임브리지에 무리해서 갔다. 갈 때는 '섀퍼에게 한학기 배우면 참 많이 배우겠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는데, 이는 꿈이었다. 케임브리지에 가보니, 그 밑에서 박사논문을 쓰는 학생만 해도 10명이 넘었고, 거느리고 있는 박사(소위 포닥들)가 5명도 더 되었다. 게다가 다른 대학에서 온 40-50대의 교수들이 그의 수업에 들어가서 흥미있는 얘기를 건져볼까 애쓰고 있었다. 나는 3개월 체류하는 동안 그를 딱 두 번 만났을 뿐이다. 한 번은 20분, 두 번째는 45분 정도 얘기했다. 그의 지도하에 논문을 쓰는 박사과정 학생들이 그를 일년에 두 번 만난다고 하니, 이에 비하면 별로 운이 나쁜 편도 아니었다.

섀퍼보다 더 인상에 깊었던 것은 케임브리지 대학 경제학과에 재직하는 한국인 J교수를 만난 것이었다. 나와 친분이 있는 과학철학자 J박사(지금은 런던대학교수)의 형이었다. 잠간 만나서 같이 점심을 먹었는데, 이 짧은 만남을 통해 큰 자극을 받았다. '한국사람이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로 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대체 공부를 얼마나 잘하고 열심히 했으면 저렇게 됐을까 생각하고 그에게 물어봤더니, 그는 그냥 하다보니까 운이 좋았다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나의 성공 수기>같은 파란만장한 얘기를 바랬던 나로서는 조금 실망이었지만, 영국인들의 자존심이라고 일컬어지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한국교수를 만났다는 사실에 마음이 뿌듯했다.

당시 나는 빨리 박사 논문을 마치고 고국에 돌아갈 생각밖에 없던 때였다. 가족과 친구들이 너무 그리웠다. 그런데 케임브리지에서 가족도 친구도 없이 몇 개월을 지나다 보니, 이것도 그런 대로 살만했다. 게다가 콧대가 높을 대로 높은 케임브리지 대학 학생들이 잊어버릴 때가 되면 내 자존심을 벅벅 긁곤했다. 점차 독기가 올라왔다. "이노무 시키들, 별것도 아닌 것들이 교수 후광을 없고 건방지기는..." 이런 독백은 점차 "그래 한번 붙어보자..."는 오기로 바뀌었다.

토론토로 돌아올 즈음에는, 몇 개월 후에 박사논문을 마치면 귀국하겠다는 계획을 수정하고, 미국에서 포닥(post-doc, 박사후과정)을 따겠다는 것으로 바꾸었다. 자연과학과 달리 과학사같은 인문학분야의 post-doc은 본토박이 애들한테도 쉽지 않은 경쟁이다. 게다가 나는 한국(서울대) 박사에 영어가 엉성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었다. 경쟁이 쉽지 않은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그래도 붙어보기로 했다. 한국 돌아가서 조금 공부한 것 가지고 "박사네"하고 폼 잡고 살기보다, 고수가 득실거리는 곳에서 살아남아 보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한국에 계신 지도교수에게도, MIT로 간 부크왈드 교수에게도 내 결심을 얘기했다. 무엇보다도 잡 마켓(job market)에 나갈 채비를 해야했다. 슈만 상 하나 가지고는 택도 없었다. 논문이 더 있어야 했다. 1993년 여름부터 학위논문을 마무리 지으면서 새로운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경쟁과 기억에 남는 연구들
요즘 학자들은 1960-70년대를 대학교수의 황금기라고 얘기한다. 예를 들어 당시 박사학위를 받은 한 평범한 학자 부부는 "뉴욕에 있는 대학에 둘 다 자리를 잡는 조건이 아니면 채용에 응모하지 않겠다"고 생각할 정도의 여유가 있었단다. 지금은 날고기는 학자가 아닌 이상에 교수 부부가 같은 대학에 자리를 잡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미국의 경우 비행기로 두어시간 떨어진 곳에 부부가 자리를 잡으면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

최근의 또 다른 경향은 취직 연령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60-70년대에는 박사학위를 받기 전에 조교수로 취직해서 강의를 시작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제 이런 예는 천연기념물 만큼이나 드물다. 포닥(post-doc)을 2-3년, 아니 이를 4-5년씩 해도 학교에 취직을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대학에 취직을 해도, 정규직 조교수가 아닌 2-3년 짜리 임시교수직인 경우가 많다. 한 통계는, 이렇게 임시직을 옮겨 다니는 것이 1990년대 젊은 학자들의 생활 패턴이 되었다고 얘기할 정도다.

간단히 말해서 경쟁이 훨씬 세지고, 또 경쟁하는 기간이 길어졌다는 얘기다. 예전에는 박사학위 논문만 잘 써서 내면 됐는데, 요즘은 학위논문만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학위논문은 기본적으로 "학생 대 지도교수의 게임"이기 때문이다. 북미의 좋은 대학 중에 교수채용 심사 때 학위논문을 제출하라고 하는 대학도 거의 없다. 무지하게 바쁜 교수들이 심사위원인데, 최종 후보 3-5명의 300-400쪽이 되는 학위논문을 언제 읽고 앉아 있겠는가? 나는 post-doc을 포함해서 총 15곳 정도에 응모를 했었는데, 학위논문을 내라는 요청을 받은 곳은 단 한군데도 없었다. (그리고 박사학위 논문도 총 12부 만들었다. 이것도 서울대 도서관에 몇부를 제출해야 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많이 찍은 것이다. 논문 100부씩 찍어서 읽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돌리고, 받은 사람들은 이를 컵라면 뚜껑 눌러놓는 용도로 쓰는 관습도 무척이나 한국적인 것이다.)

제출하라고 요청하는 것은 학위논문이 아니라 학술지에 출판된 논문들이다. 그러니까 출판된 논문이 없으면, 제출할 서류가 3-4쪽 짜리 이력서 외에는 없는 셈이 된다. 학술지에 출판된 논문을 심사 기준으로 삼는 이유는 분명하다. 학위논문과 달리 학술지에 논문을 출판하는 것은 익명의 심사위원(들)의 까다로운 심사를 거친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사 분야에서 , 는 3명, 는 보통 4명의 심사위원이 논문의 질을 검토한다. (소칼A. Sokal이 엉터리 논문을 실었던 라는 저널은 바로 이런 익명의 심사(blind refereeing)가 없었던 학술지였다.) 게다가 학자들은 자기 분야에서 어떤 학술지가 수준이 높은 것인가를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과학사 분야에서는 , 기술사에선 가 독보적이다. 이런 학술지는 논문 탈락비율이 90%에 육박한다. 즉 투고된 논문 10편 중, 1편 정도 실린다는 얘기다.

나는 92년에 슈만상을 받았던 논문을 고치고 또 고쳐서 에 출판허가를 받는데 성공했다. 최종 허가를 받을 때까지 1년 반이 더 걸렸다. 그리고 1992년, 1870-80년대에 영국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볼타 전지"의 메커니즘에 대한 격한 논쟁이 있었음을 "발굴"하고 이에 대한 논문을 쓴 것이 있었다. 학위논문을 쓰던 시기였는데, 지도교수는 딴 일 하지 말고 학위논문에 열중하라고 충고했지만, 틈틈이 시간을 내서 긴 논문을 완성시켰었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이를 라는 학술지에 출판했다.

그렇지만 기억에 남는 연구는 1993년에 조금 예상치 않게 시작했던 초기 무선전신에 대한 것이었다. 미국의 기술사학자 중에 에이켄(H. Aitken)이란 유명한 학자가 있는데, 1975년 란 책으로, 1985년에는 란 책으로 미국 기술사학회가 수상하는 영예로운 "Dexter Prize"를 두 번이나 받은 사람이다. (이를 두 번 받은 사람은 에이켄과 "기술 시스템"(technological system) 개념의 창시자로 유명한 휴즈(Thomas Hughes) 딱 두 사람뿐이다).

케임브리지에서 돌아와서 에이켄의 책을 다시 봤다. 그가 무선전신의 발명가를 마르코니(G. Marconi)가 아닌 영국의 로지(Oliver Lodge) 경이라고 하는 부분을 다시 읽게 되었을 때, 예전과는 달리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에이켄의 책에서 로지는 과학자인 헤르츠와 마르코니의 중간 정도에 위치해서 과학과 전신사업 사이의 "정보의 전달"(transfer of information)을 매개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었으며, 바로 그가 1894년 영국과학진흥협회(BAAS)의 옥스퍼드(Oxford) 미팅에서 마르코니보다 1-2년 먼저 무선전신을 시범보인 것으로 기술되어있었다.

마르코니가 무선전신의 창시자라는 얘기는 국민학생도 아는 상식이었다. 에이켄은 이 상식을 깨부순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새로운 사료에 바탕해서 두 가지 흥미 있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었다. 내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은 런던의 한 대학 도서관에서 "미출판 사료"(archives)를 뒤지다가 우연히 발견한 편지 몇 통이, 에이켄이 제시한 두 가지 증거 중에 첫 번째 것이 잘못된 거짓 증거일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기 때문이었다.

에이켄의 책을 다시 읽으며, 나는 100년 전에 있었던 1894년 옥스퍼드 미팅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밝혀보고자 맘을 먹었다. 그런데 모든 역사적 사건이 그렇듯이, 로지가 1894년 옥스퍼드에서 무선전신을 시범 보였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결정적인" 증거는 없었다. 단편적인 증거의 쪼가리들을 모으고 이를 결합해서 큰 그림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이를 가지고 몇 달을 씨름했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내 수정주의적인(revisionist) 해석은 에이켄이 틀렸음을, 아니 그가 100년 전 영국 과학자들이 교묘하게 만들어 놓은 함정에(?) 빠졌음을 지적하고 있었다.

문제는 금방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제 '누가 무선전신을 먼저 발명했는가'라는 교양과학신서 수준의 우선권 논쟁이 아니라, 특허, 사료(historical sources)의 의미와 해석, 민족주의, 과학과 기술의 관계, 개인적인 배신감 등이 복잡하게 얽힌 것임이 드러났다. 어느덧 수수께끼가 보다 분명해지고, 당시 마르코니의 첫 무선전신 특허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논쟁과 음모(?)의 실체가 뚜렷해졌다. 나는 에이켄이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음을 점점 확신했다. 내 해석은, 로지의 1894년(!) 무선전신이 일종의 "조작"임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없었다. 상대가 누구인가! 날고 긴다는 학자들도 평생 한번 타기 힘든 Dexter Prize를 두 번이나 수상한 대가(大家) 아닌가. 나는 영어도 못해서 쩔쩔매는 박사과정 학생이고...

한참을 망설이다 내 얘기를 논문으로 만들었다. 눈을 딱 감고 이를 에 투고했다. 당시 편집인은 이 논문을 3명의 심사위원에게 보냈는데, 그중 한 명이 바로 에이켄 본인이었다. 에이켄을 제외한 다른 두 명은 내 논문에 대해 극찬을 했다. 에이켄은 논문의 저자를 텍사스 대학의 헌트 교수로 오인했는데 (그리고는 영어가 가끔 틀린다고 의아해했는데), 논문의 주장에 대해 상당히 불편해 했다. "해석이 우리가 하는 게임의 룰이라면..." "그는 마르코니의 편..." "나는 아직도 내가 왜 틀렸는지 모르겠다..."는 그의 코멘트로 미루어 보아 그가 내 주장에 설득 당하지 않았음을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 논문의 출판을 추천했다. 논문을 출판하고 누가 옳은지 독자들이 판단하게 하자는 얘기를 하면서. 나는 그의 학자 됨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어떻게 보면, 수십 년 존경받는 학자로 살아온 그에 대한 비판이 될지도 모르는 (그것도 심각한 비판일 수 도 있는) 논문을 선뜻 출판하라고 추천한 것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내 논문에 대해 코멘트를 하고 불과 두 달이 안돼서 그는 사망했다. 나는 그를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결국 이 소망을 이루지 못한 셈이다. 1994년 미국 기술사학회의 만찬에서 수전 더글러스라는 학자가 그의 조사를 읽었는데, 건강하던 사람이 갑자기 사망해서 충격이 컸다는 얘기를 듣고 조금 기분이 씁쓸했다. (그는 1985년 책 이후, 스펙트럼의 역사에 대해 엄청나게 방대한 자료를 축적하던 중이었다. 나는 그 자료를 구경하고 싶어서 하버드대학 교수인 그의 딸에게 접촉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처음엔 내게 무척 호의적이었지만 내가 에 실린 내 논문을 한 부 보내주고 난 뒤에는 아무런 연락이 없다.)

1993년 봄에 있었던 학회발표에 기반해서 변압기의 설계를 둘러싸고 과학자와 기술자들 사이에 벌어졌던 논쟁에 대한 논문을 하나 더 만들었다. 이 논문은 학위논문의 한 챕터에 바탕한 것이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고 1994년 2월 학위를 받았다. 1991년 2월에 토론토에 갔으니까, 만 3년 만이었다. 졸업식에 참석하고 토론토에 돌아와 보니, 칼텍(Caltech)에서 응모한 직장에서 떨어졌다는 편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몹시도 어정쩡한 상태로 잡 마켓(job market)에 나왔다. 1992년 슈만 상 수상. 1992년 IEEE 장학금 수상. 출판 허가를 받은 논문 4편. 그중 두 편은 와 에 출판 예정. 그렇지만 이름 없는 대학 (대한민국의 서울대학) 박사학위 소지. 동양인. 국적 한국. 캐나다 시민은커녕 영주권자도 아님. 영어는 간신히 글을 쓸 정도 되지만, 강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 이것이 1994년 당시 내 이력서였다.

한편으로 보면 눈에 차는 것도 없을 정도로 지적(知的)으로 무모했고 또 건방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심신이 찢기고, 지치고, 주눅들어 쓰러지기 일보직전의 모습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백인 사회에서, 그들의 경쟁에서 한국 대학의 학위를 들고 살아남으려고 버둥거리던, 조금은 슬픈 34살의 자화상이었다.

사족
1993년 내 미래가 너무 불확실할 무렵에, 나의 어머니께서 점을 보셨다. 그 "철학자"(?) 양반이 내가 1994년 7월부터 월급을 타고, 1995년 1월에 교수가 된다고 했다는 얘기를 했단다. 어머니께 제발 점 보는데 돈 쓰시지 말라고 질책 투로 전화통화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포닥(post-doc)이 돼서 첫 월급을 받은 게 1994년 7월이었다. 토론토대학 교수공채에 응모한 게 1994년 9월이었는데, 50대 1의 경쟁을 뚫고 합격 통지를 받은 것이 1995년 1월이었다. 나는 점을 안 믿지만, 지금도 이를 돌이켜 보면 참 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홍성욱 캐나다 토론토대학 과학기술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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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긴 글인데 다 읽어보게 되었다... 솔직히 읽혔다.
멋지다! 감동적이다! 그리고... 부럽다... 라는 생각..

울 뻔했다.
불안정한 34살의 자화상..

숨이 턱턱 막히는 사람과 함께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이다.
수만배의 스트레스로 누를 지라도 말이다.

동감! 동감!
- 무림의 고수
- 그저그런 젠체하는 박사
- 듣보잡인 한국의 서울대학교 박사
- 나만의 무기! 나라서 할 수 있는 전략 찾기

3 January 2011

[문화칼럼/유종호]‘괴짜’ 많아져야 세상은 풍성해진다

2011년 01월 01일

연하장을 주고받는 시점에 매스컴이 벌이는 공통의 의식(儀式)이 있다. 한 해 동안의 큰 사건을 선정 보도하고 화제를 모은 인물과 세상을 뜬 인물을 돌아본다. 그러는 한편 분야별 전문가의 예측을 보도한다. 한동안 점성술사의 발언까지 보도하더니 요새는 뜸해졌다. 이러한 공적 성격의 행사와 거리가 먼 사사로운 행사를 구상해 본다면 어떻게 될까?

나의 문화적 대사건은 우선 노벨상과 관련된다. 톨스토이도 릴케도 조이스도 쿤데라도 못 탄 문학상을 크게 평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벨상이 우리를 보는 타자 시각의 한 지표이며 국력의 반영이란 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에도 선전해서 모두 17명의 수상자를 낸 일본의 기록은 큰 사건이다. 정치색이 없는 편인 과학 분야에서 많은 수상자가 배출되었으니 착잡한 심정이다.

옛날처럼 ‘대국’ 행세를 하려 드는 중국과 특히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 한참 앞서가는 일본 사이에 끼어 있는 우리 처지가 걱정스럽다. 경제적 도약 이후 우리가 모든 분야에서 많은 성취를 이루고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7명의 기록은 우리의 국력을 가리키며 냉혹한 자기성찰을 요구한다. 아시아 올림픽 2위는 물론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거기에 머물러 희희낙락할 처지가 아니다.

휴전 이후 상황 여전히 가혹하지만

우리의 상황은 가혹하다. 휴전 이후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발탄 밑에서 살고 있다는 심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제 불발탄이 아니라 ‘국산’ 핵폭탄 밑에서 살게 되었다. 이 나이에 새삼 무섬을 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라나는 어린 세대들이 걱정스럽다는 얘기다. 17명을 배출한 나라의 어린 세대보다 한결 열악한 상황에 있지 않은가.

문단에서는 요즘 인터넷 소설이 큰 화제다. 많은 작가들이 참여하여 장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많은 독자를 갖게 되고 수입도 괜찮다니 뭐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미디어는 메시지가 아닌가. 냉골에서 냉수 마시며 머리띠를 두른다고 좋은 문학이 나올 리 없다.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는 말이 있다. 천금(千金)이면 죽지 않고 백금(百金)이면 감옥살이 않는다는 말도 있다. 모두 자본주의가 대두하기 이전에 생긴 말이다. 작가도 먹고살아야 한다.

코페르니쿠스는 본래 점성술사였다. 그러나 천문 관측 과정에 지동설을 알게 되었고 그 바람에 천문학자가 되었다. 케플러는 유능한 천문학자였으나 점성술사가 되었다. 점성술사가 위세도 있고 수입도 좋았기 때문이다. 인터넷 연재는 결과적으로 케플러의 길을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맥락에서는 젊은 세대에 애독자가 많은 무라카미 하루키도 마찬가지다. 천문학자임을 포기하고 점성술사가 되어 돈방석에 앉아 박수갈채를 받고 있다.

2010년에 세상을 뜬 인물을 선정한다면 우선 6월에 일본에서 작고한 손창섭을 꼽겠다. 고속발전을 이룩한 사회일수록 건망증이 심하다. 1950년대 암울한 시대의 사회사를 담은 수작으로 많은 애독자를 모았던 그는 부인의 나라 일본으로 이주했다. 기독교 계통 이단적 종파의 열렬한 신자가 되어 거리에서 전단을 나누어 주고 또 이따금 한국대사관 건물에 나타나 계단에서 통곡하기도 했다 한다.

그는 괴팍한 작가로 소문나 있었다. 누구에게도 주소를 알리지 않고 각별히 친한 이도 없었다. 그러나 냉소적인 작품 경향에도 불구하고 문학을 대하는 태도만은 엄격했다. 그의 원고는 단 한 자의 오자도 없고 고친 흔적도 없이 정서되어 있었다. 글씨는 달필이면서도 단정했고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았다. 기행과 우국행동을 연출하여 광고효과를 내고 시장에서 실적을 올리는 것 같은 자가선전과 담을 쌓고 주변인으로 살다 갔다. 그 점에서 그는 예스러운 문학 순교자이기도 했다.

또 한 사람은 친구 귀띔으로 최근 알게 돼 찾아 읽으려는 고무로 나오키(小室直樹)라는 일인이다. 소련이 경제 시스템의 결함으로 붕괴한다는 취지의 ‘소비에트 제국의 붕괴’란 책을 1980년도에 내서 알려지게 되었다. 학부 때 수학을, 미국에서 폴 새뮤얼슨 밑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귀국한 후 정치학 사회학 인류학 등 사회과학을 통합하는 거대이론 구성을 목표로 삼았다. TV나 전화도 없는 하숙에서 고정 수입 없이 연구에 전념하다 갔다는 것이다.

관행에 얽매여서는 발전 없어

에릭 홉스봄은 소련 붕괴를 예측하지 못한 점에 역사가로서의 자괴감을 표시했다. 20세기 말에 사회주의로 남아있을 나라는 중국뿐이라고 말한 저널리스트가 유일하게 선견지명을 보였다는 것이다. 사르트르를 비롯해 주도적 서구 지식인들이 중국 공산당 자체가 부정하게 되는 문화대혁명을 찬양해서 청년들을 오도한 비극적 사실을 감안할 때 고무로 같은 이는 주목받아 마땅하다.

손창섭, 고무로 같은 괴짜 작가나 학자가 많이 나와야 문학도 학문도 깊어질 것이다. 연구자들을 소규모 논문 작성에 매어두는 관행을 철폐하고 획기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는 한 노벨 과학상 수상의 가망은 없다.

유종호 문학평론가·전 연세대 특임교수

구제역 충남-강원영동 지역 확산

2011년 01월 03일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가 확산되면서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이 가축 질병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사실상 전국이 총력 방역 체제 권역에 들었다. 지난해 11월 29일 발생한 구제역은 경북, 경기, 인천, 강원, 충북을 거쳐 2일 충남과 강원 영동으로까지 확산됐다. 구제역은 6개 시도 37개 시군에서 발생했고 도살처분 규모는 66만 마리를 넘어섰다. 한편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은 전남·북, 경남은 고병원성 AI 방역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남과 경남은 야생조류에서, 전북과 충남은 가금류에서 각각 AI 바이러스가 발견됐다.》

○ 꺾일 줄 모르는 구제역

농림수산식품부는 충남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젖소농장과 병천면 관성리 돼지농장, 강원 강릉시 구정면 어단리 등 모두 11건의 구제역 의심 신고에 대한 조사 결과 양성으로 판명됐다고 2일 밝혔다. 경북에서 경기까지 북상한 구제역이 다시 남쪽으로는 충북을 거쳐 충남까지, 동쪽으로는 영동지역까지 번진 것. 천안과 강릉 외에도 경북 포항시, 경기 광명시, 강원 양구군에서도 처음으로 구제역이 발생했다.

문제는 충남이 돼지 사육규모 1위(191만2161마리), 젖소 사육규모 2위(7만9903마리)라는 점이다. 젖소는 경기, 한우는 경북이 사육규모가 가장 큰데 이 두 지역에는 이미 구제역이 광범위하게 확산된 상태다.

방역 당국은 2일 천안 발생농장으로부터 반경 10km 이내에 대해서 백신을 접종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백신 접종 지역은 19곳으로, 대상은 소 48만3000여 마리로 늘어났다.

그러나 구제역은 이미 충남 일대에 광범위하게 확산됐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이날 천안에서 2건의 구제역이 발생한 데 이어 보령시에서도 구제역 의심 신고가 접수됐다. 이 밖에 충북 괴산군, 강원 춘천시, 경북 영천시 경주시에서도 의심 신고가 접수됐다.

○ AI는 철새가 옮긴 듯

방역 당국은 지난해 12월 31일 전북 익산시, 충남 천안의 가금류에서 발견된 AI 바이러스가 철새에 의해 확산된 것으로 보고 있다. 방역 당국은 “익산과 천안의 가금류에서 발견된 바이러스가 익산, 충남 서산시, 전남 해남군의 야생조류에서 발견된 AI 바이러스와 동일한 유전자 그룹에 속하는 것으로 분석됐다”며 “이 바이러스는 2009년과 2010년 몽골 야생조류에서 발견된 것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31일 경남 사천시의 야생조류에서 발생한 AI와의 유사 여부는 조사 중이다.

이에 따라 방역 당국은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철새 도래지 등에 대해 철저한 소독을 실시해 달라고 요청했다. 농식품부는 “닭이나 오리의 분뇨를 통해 AI 바이러스가 확산될 수 있으므로 가금류의 분뇨를 농장 밖으로 이동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AI는 1, 2일 양일간 추가 의심신고가 접수되지 않았다.

구제역과 AI의 동시 발생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인해 방역 당국의 어려움도 커지고 있다. 특히 구제역과 AI가 모두 발생한 유일한 지역인 천안은 방역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방역 당국 관계자는 “AI의 경우 아직까지 전국 확산은 아니라고 보고 방역을 통한 확산 방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구제역과 AI 방역에 동일한 소독약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한상준 동아일보 기자

alwaysj@donga.com

전세계 기록적 폭설-한파 원인 북극 고온이 찬공기 밀어낸 탓

2011년 01월 03일

이번 겨울 들어 처음으로 한강이 얼어붙었다. 기상청은 2일 “연말연초부터 계속된 찬 대륙성고기압의 영향으로 한강의 결빙이 관측됐다”며 “결빙은 강물을 완전히 볼 수 없는 상태를 뜻하며 올겨울 한강 첫 결빙은 평년보다 11일 빠르다”고 밝혔다. 한강 결빙 관측지점은 한강 수계의 중앙인 한강대교의 노량진 방향 2번째와 4번째 교각 사이 상류 100m 부근. 이곳에서 결빙을 측정하는 이유에 대해 기상청은 관측지점 선정 당시인 1906년 노량진 나루가 한강의 주요 나루여서 접근성이 뛰어났다고 설명했다.

또 이번 주 내내 전국적으로 영하 10도 내외의 한파가 계속될 것이라고 기상청은 내다봤다. 3일 아침 최저기온은 인천 보령 군산 안동 영하 8도, 서울 청주 대전 전주 거창 고창 영하 9도, 영월 대관령 서산 영하 10도, 원주 천안 영하 11도, 수원 남원 충주 영하 12도, 이천 춘천 영하 13도, 동두천 영하 14도, 철원 영하 16도, 문산 영하 17도 등 전국 대부분 지역이 영하 10도 안팎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강원 영동과 경북 지역에서는 많은 눈이 올 것으로 예보됐다. 예상 적설량은 강원 영동 및 산지, 경북 동해안은 3∼10cm, 경북(경북동해안 제외) 1∼5cm 등이다. 6일도 찬 대륙고기압의 영향으로 서해안 지방에 많은 눈이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잦은 한파와 폭설의 원인에 대해 기상청은 “북극의 기온이 평년보다 높아지면서 차가운 공기가 중위도까지 내려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북극의 기온이 차가울수록 북극 상공의 공기 회전이 빠르고 한기가 회전 소용돌이 속에 갇히게 된다. 이에 찬 공기가 북반부 중위도로 내려올 수 없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16일 이후 북극 지방의 기온이 상승하면서 공기 회전력이 약해졌고 찬 공기가 회오리에서 빠져나와 중위도로 내려오고 있다는 것. 기상청 관계자는 “최근 유럽, 러시아, 중국 북부, 미국 등지에서 발생한 기록적인 폭설과 한파도 북극의 한기가 내려왔기 때문”이라며 “북극의 찬 공기가 동아시아에도 머물 것으로 보여 당분간 한반도 역시 한파가 자주 나타나고 중부지방과 서해안을 중심으로 많은 눈이 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윤종 동아일보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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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위를 걷는 사람들을 읽은 보람이 있네.. 다음 학기 추천 도서로 찜!

14 December 2010

“이 빌어먹을 컵, 어떻게 할까”… 스타벅스의 종이컵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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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고 구내 커피숍에서 2000원이면 따뜻한 커피와 함께 함께 있는 동료들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
많게는 하루 두 잔 정도 일회용 컵에 담긴 커피를 마시는데,
너무 멀쩡한 종이컵을 휴지통에 버리자니
언제나 빛진 기분이 든다.
그렇게 누리며 살면서, 세상에 도움될 행동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반성되기도 한다...

여하튼...
일단 멋지구리한 여섯 개의 일회용 종이컵을 모으고
바닥에 구멍을 뚫어서 집에서 분양받아 제라늄, 사철나무, 이름모르는 다육식물 등을 심어 왔다.
허옇기만 한 종이컵이 멋진 디자인으로 인쇄된 골판지를 입고,
컵의 마개 플라스틱을 화분 받침으로 두었더니 종이컵인지 모를 정도로 그럴싸 했다.

볕이 잘 들고 온도도 낮지 않으니까 잘 자랄 것이라고
수선 떨면서 딸이 심는다 하니까 믿지 못하면서 식물을 내 주시는 엄마를 설득하여 사무실로 가져 왔다.

계획은 여섯 개의 일회용 컵이 물을 주면 약해 질 테니까
매주 월요일날 물을 주고 난 다음에,
새 종이컵을 다시 받쳐서 재사용하리라 생각했다.

사무실에서 종이컵을 회수해서 씻고 한데 모아두었더니,
생각했던 것 보다 종이컵이 모아지는 속도가 장난 아니어서
어쩜 여지껏 이 많은 종이컵들을 그냥 버렸구나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인터넷으로 멋진 재활용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는데,
모아서 재활용할 때 종이컵만 1kg이 모여야 겨우 30원이기 때문에 거의 업체에서도 반기지 않고,
재활용 아이디어는 찾기 힘들었고 모두 사용하지 말자는 선언(?)들에 가까워서...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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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4 18:10]

커피회사 스타벅스의 주가는 2006년 봄 39.6달러를 기록한 뒤 2년여 만에 ‘4분의 1 토막’이 됐다. 2008년 가을 금융위기 직후엔 8달러까지 추락했다. 거의 포화상태라는 커피 시장에 맥도날드와 던킨도너츠가 본격 진출하면서 성장세가 꺾였다. 이후 주가는 2일 현재 29달러까지 올랐지만 고점을 회복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런 스타벅스의 요즘 고민은? 커피가 아니라 ‘컵’이다. 어떻게 커피를 더 많이 팔까보다 어떻게 일회용 컵 소비를 줄일까에 몰두해 있다고 미 월간지 ‘패스트 컴퍼니’가 11월호에 보도했다. 기사 제목은 ‘이 빌어먹을 컵을 어떻게 할 거요?(What are you going to do about this damn cup?)’ 지난 몇 년간 주주총회 때마다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이 들어야 했다는 질문이다.

커피 팔려면 컵부터 해결하라

시애틀의 작은 커피숍이 세계 최대 커피 회사로 성장하는 동안 비판의 목소리도 함께 커졌다. 타깃은 두 가지였다. 제3세계 저임금 커피 노동자를 착취한다는 유통구조와 환경을 파괴하는 일회용품 사용. 여론은 눈에 보이는 일회용품에 더 민감했고, 그중에도 새하얀 바탕에 초록색 로고가 새겨진, 이제 스타벅스의 상징이 된 종이컵이 문제였다.

스타벅스는 미국 1만1000여개 매장에서 연간 30억개의 일회용 컵을 배출한다. 뜨거운 커피용 종이컵이 20억개, 찬 음료용 플라스틱 컵이 10억개다. 그러나 미국 매장 중 불과 5%, 시애틀과 샌프란시스코처럼 법으로 의무화된 지역만 재활용 체계를 갖췄다. 나머지 매장의 컵은 땅에 묻힌다.

스타벅스 종이컵은 매장이 7개였던 1984년 도입된 뒤로 몇 차례 변신을 했다. 종이컵을 쥐는 손이 뜨겁지 않도록 컵에 끼워주는 ‘슬리브’도 종이컵 사용을 줄이려고 고안됐다. 97년 슬리브가 등장하기 전에는 종이컵 2개를 겹쳐서 커피를 담았다. 2006년 재생지가 10%쯤 섞인 종이컵을 만들기 시작했고, 2008년부터 플라스틱 컵에 폴리에틸렌 대신 온실가스 배출이 적은 폴리프로필렌을 사용했지만, 여론은 만족스러워하지 않았다. 소비자 눈에는 여전히 거리에 나뒹구는 스타벅스 컵이 보였다.

주가가 8달러대로 추락했던 2008년 10월, 슐츠 회장은 직원 1만명이 모인 연례 회의에서 “2012년까지 스타벅스 컵을 100% 재활용하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커피보다 ‘문화’를 팔아 성공했다는 회사가 이번엔 녹색기업 ‘이미지’를 팔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 전략이 얼마나 험난한 길인지는 오래지 않아 확인됐다.

컵 문제를 총괄하는 짐 한나(41) 지속가능경영 담당 이사는 미 와이오밍주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환경보호 책임자 출신이다. 그는 “처음엔 환경오염 시비가 없는 마법의 친환경 물질을 찾아 컵을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컵의 재료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슐츠 회장이 ‘100% 재활용’을 선언할 때 미국의 대다수 재활용 업체는 종이컵을 받지 않았다. 소량의 플라스틱이나 왁스로 방수 처리가 돼 있어 다른 종이와 함께 가공하기 어려워서다. 또 고객의 80%는 테이크아웃을 택한다. 손님이 들고 가버린 종이컵은 어떻게 재활용할 건가.

종이컵 정상회담

스타벅스는 일단 매장에 버려지는 컵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지난해 11월 시애틀 본사에서 ‘종이컵 정상회담(Cup Summit)’이라 이름 붙인 첫 회의를 개최했다. 재활용과 관련된 업체 대표, 대학교수, 시민단체 관계자 30명이 참석했다. 웨스턴미시간 대학의 조엘 켄드릭 교수가 스타벅스 종이컵을 일반 판지와 함께 재활용하는 방법과 실험 결과를 제시했다.

업체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지만 재활용도 결국 비즈니스다. 돈이 돼야 달려들고, 그러려면 충분한 물량이 확보돼야 했다. 지난 4월 2차 종이컵 정상회담에는 100여명이 초청됐다. 그중엔 던킨도너츠 맥도날드 등 경쟁업체 관계자도 다수였다. 도시마다 여러 브랜드가 함께 종이컵을 모아서 컵 재활용 산업을 창출하자는 구상이다.

스타벅스는 지난 9월 뉴욕에서 9주짜리 종이컵 재활용 실험을 시작했다. 뉴욕의 86개 매장에 분리수거함을 설치하고, 매일 밤 모아진 컵을 재활용품 수거업체가 가져가고, 인근 제지업체가 이걸로 페이퍼타월이나 복사용지를 만든다. 경제성이 확인되면 전국 각 도시로 경쟁업체들과 함께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그럼 손님이 분리수거함에 넣지 않거나 매장 밖으로 가져간 종이컵은?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운동 단체 ‘애즈 유 소(As You Sow)’가 이런 컵의 회수율 목표치를 제시하라고 요구하자 스타벅스는 거부했다. 한나 이사는 “테이크아웃 컵을 다시 가져오거나 분리수거함에 넣는 것은 고객의 선택이다. 이를 예상할 방법이 없다. 현재로선 재활용 시스템 구축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신 지난 5∼6월 ‘베타컵 콘테스트’를 개최해 2만 달러 상금을 걸고 친환경 컵 디자인을 공모했다. 기상천외한 커피 컵들이 출품됐다. 야자수 잎 같은 천연 재료를 가공해 만드는 컵, 다 마신 뒤 주머니에 쏙 넣고 다니게 접히는 컵, 아예 다 먹어버리도록 과자로 만드는 컵….

1위는 디자인이 아니라 손님들이 스스로 종이컵을 안 쓰게 유도하는 간단한 아이디어였다. 매장 카운터 옆에 작은 칠판을 놓고 머그나 개인 텀블러를 사용하는 손님이 올 때마다 기록한다. 이렇게 종이컵을 안 쓰는 10번째 손님마다 커피를 공짜로 준다.

내가 종이컵을 안 쓰면 누군가 공짜 커피를 마시고, 그래서 종이컵 안 쓰는 사람이 늘면 나도 공짜 커피를 마실 가능성이 높아지니까 종이컵 사용이 줄어들 거라는 원리. 최선의 재활용은 안 쓰는 것이란 이 아이디어는 스타벅스 시애틀 매장에서 지금 실험되고 있다.

미국 스타벅스가 ‘100% 재활용’을 위해 2년간 해온 것은 여기까지다. 매년 배출되는 30억개 일회용 컵 중 20억개 종이컵만, 그것도 매장에 버려지는 4억개(20%)에 대해서만 재활용하는 시스템을 이제 테스트하는 중이다.

슐츠 회장은 “종이컵이 문제야? 그럼 가서 방법을 찾아” 하는 즉흥적 성격이라고 한다. 그의 명령과 2년의 노력에도 아직 마법의 묘책을 찾지 못했다. 스타벅스는 100% 재활용 달성 시한을 2015년으로 늦췄다. ‘커피 제국’을 만들어준 새하얀 종이컵이 이젠 발버둥쳐 넘어야 할 장애물이 됐다.

그럼 스타벅스코리아는?

스타벅스 종이컵은 세계 50개국 1만7000여개 매장에 미국 본사가 일괄적으로 공급한다. 제작 노하우를 지키고 비용 절감을 위해서라고 한다. 한국 스타벅스도 본사가 보내오는 종이컵을 쓰고 있다.

한국 스타벅스 박찬희 사회공헌팀장은 “국내 재활용 산업은 미국보다 발달했다. 매장마다 분리수거함이 있고, 분리되지 않은 컵도 직원들이 골라내 모두 재활용 업체에 넘긴다. 방수 처리가 됐더라도 몇 가지 가공을 거쳐 재활용 된다”고 말했다.

국내 스타벅스 매장은 320여개다. 하루 평균 13만명이 커피를 주문해 연간 5000만잔가량 팔린다. 테이크아웃 비율은 약 50%. 음식을 앉아서 즐기는 좌식문화 덕에 매장 밖으로 나가는 종이컵 비율이 미국보다 낮다.

그러나 매장에서 마셔도 종이컵 대신 머그를 택하는 사람은 14%에 불과하다. 박 팀장은 “50원 컵 보증금이 있을 때는 머그 사용률이 40%에 육박했다. 2008년 규제 완화를 위해 보증금을 없앤 뒤로 종이컵 사용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11 December 2010

'생각 전염'‥행복한 사람과 가까이하라!

생각도 전염이 된다고 하죠.

행복한 생각을 하는 사람과 가까이하면 나도 행복해지고, 불행한 생각을 하는 사람과 가까이하면 나도 불행해진다고 합니다.

또, 나아가 생각은 우리 몸까지 변화시킨다고 합니다.

우리는 언제 행복한 생각을 하게 될까요?

"맛있는 식사, 편안한 집, 든든한 직장을 가질 때죠."

"눈이 오면 썰매 타고 친구랑 놀 때요."

요요 선수
"요요할 때 행복해요."

그런데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이 20년간 4,700명을 관찰해본 결과, 친구가 행복한 생각을 하면 나도 따라서 행복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파울러 교수/UC샌디에고 대학
"행복은 사회 망을 통해 바이러스처럼 퍼져요. 친구의 친구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지죠."

행복한 친구와 1km 이내 가까이 사는 사람들은 자신도 행복해질 확률이 42%나 높았습니다.
행복한 친구가 3km 떨어진 곳에 살아도, 행복해질 확률은 22% 더 높았습니다.

파울러 교수/UC샌디에고 대학
"행복한 사람들은 심장도 튼튼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이 적어 오래 삽니다."
그런데, 생각은 우리의 마음뿐 아니라 몸까지 바꾸어 놓습니다.
연구진은 친구가 비만이면 자신도 비만이 될 확률이 57%나 더 높아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비만인 친구와 아주 친한 사이라면 확률은 171%까지 급증했습니다. 비만인 친구를 좋아하면 무의식적으로 '비만한 것도 좋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자신도 따라서 비만해진다는 분석입니다.

결국,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과 얼마나 가까이하느냐도 우리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설명입니다.

imnews@imb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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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동감.

6 December 2010

올해 기후변화로 인한 사망자 2만명 넘어

국제식량정책연구소, “2050년 곡물가격 2배 이상 오를 것”

2010년 12월 03일

멕시코 칸쿤에서 지난달 29일부터 ‘제16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열리는 가운데 국제기구와 비정부기구(NGO) 등은 기후변화에 따른 위험이 날로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기후변화로 목숨을 잃는 사람 수가 매년 크게 증가하고, 2050년경에는 곡물가격이 지금보다 2배 이상 올라 식량안보에 빨간불이 켜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다.

● 개도국 GDP 10여% 기후변화로 소모해

올해 8월 파키스탄은 홍수로 인해 2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국토의 20%를 뒤엎은 홍수로 2000만 명이 피해를 입었다. 재산피해는 97억 달러에 달한다. 러시아의 올 여름 평균기온은 14도를 넘었다. 기온이 예년(7.8도)보다 크게 오르자 사망률이 두 배로 늘어 모스코바에서는 하루 사망자 수가 700명에 달했다.

또한 2만6000건의 산불이 나면서 전체 밀 농장의 26%정도가 파괴됐다. 중국에서는 홍수로 1억4000만 명이, 가뭄으로 5100만 명이 피해를 입었다.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이 지난달 29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처럼 올해 기후변화로 사망한 사람은 2만1000명으로 지난해(1만명)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폭염·홍수·해수면 상승 등 기후변화로 인한 여러 통계를 종합한 결과다.

옥스팜은 “기후변화를 완화시키고 여기에 적응하기 위한 조치가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보고서는 현재 개발도상국이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1~12%를 기후변화 비용으로 소모하고 있고, 2030년경이면 그 비율이 GDP의 19%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 2050년 곡물가격 지금보다 2배 이상 비싸

식량안보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는 1일 2050년 곡물가격은 지금보다 2배 이상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IFPRI는 국제경제·기온상승률·강수량 변화 등을 고려한 15개 시나리오를 슈퍼컴퓨터에 입력해 계산한 결과, 2050년 기온은 20세기보다 6.4도 높아지고 옥수수는 42~131%, 쌀은 11~78%, 밀은 17~67% 정도 각각 가격이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상기후에 적응하지 못한 작물의 생산량이 감소하고, 산불·해수면 상승 등으로 경작지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IFPRI 제럴드 넬슨 연구원은 “이러한 현상은 인구증가와 맞물려 인류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엔은 현재 69억 명인 세계 인구수가 2050년경이면 100억46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IFPRI는 “개도국의 농업에 투자하는 일이 식량위기를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라고 조언했다. 농부들이 높은 수익을 올리게 되면 홍수와 가뭄 같은 이상기후에 적절히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가장 더웠던 2010년

그러나 이러한 비관적 전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지구의 평균 기온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올해는 1850년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따듯한 해가 될 전망이다.

AFP통신은 이날 기자회견을 가진 미셸 자로 세계기상기구(WMO) 사무총장의 말을 인용해 “12월 기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지금까지 평균기온은 이전에 가장 높았던 1998년과 2005년 보다 조금 높다”면서 “이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이라고 보도했다.

WMO에 따르면 올해 해수면 평균기온은 1961~1990년 보다 0.55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중국, 파키스탄, 캐나다 등지에서 최고기온을 갱신했는데, 파키스탄의 경우 기온이 53.5도까지 올라 1942년 이후 아시아 최고 기록을 세웠다.

제16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공동취재팀=
변태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xrockism@donga.com
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mes@donga.com
원호섭 동아사이언스 수습기자 wonc@donga.com
최세민 동아사이언스 수습기자 July@donga.com

30 November 2010

[동아광장/정재승]학자들의 천국, 학자들의 지옥

2010년 11월 30일

미국 프린스턴 고등학술연구소는 아인슈타인이 인생의 마지막 연구열을 불살랐던 연구소다. 쿠르트 괴델, 브누아 망델브로, 요한 폰 노이만, 프리먼 다이슨 등 걸출한 과학자를 세상에 배출한 지성인의 놀이터였던 이곳에서 지금도 에드워드 위튼 등 초끈이론의 대가들이 모여 현대과학의 최전선을 만들고 있다.

지적 호기심 넘쳐나는 프린스턴硏

과학저술가 에드 레지스가 쓴 ‘누가 아인슈타인의 연구실을 차지했을까?’(2005년·지호)에 따르면 이 연구소는 백화점 사업으로 큰돈을 번 루이스 뱀버거와 그의 누이 캐럴라인 뱀버거 펄드가 주식을 판 후 대규모 기부활동의 첫걸음으로 지었다.

뱀버거 남매는 당시 의과대학 시스템에 박식했던 에이브러햄 플렉스너를 찾아가 의과대학을 짓겠다며 도움을 청하는데, 그들이 의기투합한 곳은 대학이 아닌 연구소였다. 지원은 있으나 의무는 없으며 자연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과 학문적 열정만으로 연구가 이루어지는 ‘과학자들의 에덴’을 짓기로 결정했다.

1930년 설립된 이 연구소는 순수이론과 기초과학의 산실로서 지금까지 14명의 노벨상 수상자와 20여 명의 필즈상 수상자를 배출하며 ‘과학자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연구소’로 오랫동안 자리하게 된다. 아인슈타인이 썼던 방을 쓰기 위해 쟁탈전을 벌이고, 서로 자신이 천재라고 믿는 이 시대 걸출한 지성인들을 옆방 연구원처럼 쉽게 만날 수 있는 곳. 이곳에 가면 누구나 시들했던 학문열정이 다시금 용솟음치게 된다.

어떻게 이 연구소는 세계적인 과학자들을 한데 모으고 그들로 하여금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만들었을까. 뱀버거 남매와 플렉스너의 철학은 간단했다. 학자들에게 천국을 만들어주면 창의적인 연구 성과가 절로 나오리라 믿었다.

학자들이 바라는 천국은 ‘일하지 않고 놀고먹는 공간’이 아니다. 연구소가 지적인 자극으로 넘쳐나고, 날마다 새로운 생각이 만들어지고 치열하게 비판받는 곳. 다양한 시도를 격려하고, 의미 있는 실패가 용납되며, 누구도 평가하지 않는 곳. 승진이나 월급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호기심과 학문적 열정만으로 평생 연구를 수행하는 곳이다.

논문이 아니더라도 연구의 결과물이 다양한 형태로 세상에 기여하면 기꺼이 지원받을 수 있는 곳. 영감어린 토론으로 하루를 보내고, 내일의 출근이 기다려지는 곳. 어찌 이런 곳에서 지적으로 나태할 수 있겠는가!

레지스의 책을 읽은 후로 이 연구소는 나의 ‘꿈의 연구소’가 되었다. 나는 날마다 꿈을 꾼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연구소가 하나쯤, 아니 딱 하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꿈을 조심스레 선배 교수에게 고백하니, 그가 내게 조언한다. “나는 학자들의 천국은 바라지도 않아. 지금의 지옥에서만 탈출할 수 있게 해줘!”

연구실적 요구하는 한국의 현실은

우리나라 정부가 이런 연구소를 기획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국민의 세금으로 학자들의 천국이 웬 말인가. 평가가 사라진다면 과연 학자들이 연구를 열심히 할지 못미더워할 것이며, 이 제도를 악용해 연구비를 남용하고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는 학자들을 색출할 제도장치를 마련하는 데 여념이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학자들에게 연구비는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허락된 교부금(grant)이 아니라 목표 달성을 위한 용역비에 좀 더 가깝다. 과학이란 우주와 자연과 생명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지적 탐구가 아니라 국가가 발전하는 데 기여해야 할 성장동력으로만 간주되는 이상 기초과학연구소라도 원천기술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고 공무원들은 변명할 것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평가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지적 호기심으로 연구를 해온 역사가 훨씬 더 길며 인센티브가 없어도 좋은 연구 성과를 내고 싶어 안달이 날 만큼 학문적 욕심도 강하다. 그들을 격려하고 더욱 고무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일이 나태한 학자에게 채찍을 가할 궁리를 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다. 실제로 연구평가를 다음 연구비 수혜를 위한 고려사항으로 미룬다면 제도를 남용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을 선진국의 사례에서 배울 수 있다. 우리에겐 ‘20세기형 뛰어난 관리자’ 같은 과학자가 아니라 ‘21세기형 창조적 리더’ 같은 과학자가 필요하다. 학생이라는 인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해 기대목표를 만족하는 성과 중심형 관리자가 아니라 학생의 자발적 창의성을 끄집어내 함께 꿈을 실현하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는 ‘인간가치를 깨달은 리더’가 필요하다.

학자는 시시포스처럼 형벌 같은 연구의 수레를 돌릴 때보다 지적인 놀이터에서 어린아이처럼 놀 때 창의적인 연구를 한다는 사실을 모두가 깨달아야 할 때다. 그것이 우리 학자들이 꿈꾸는 학교이자 연구소다.

‘학자들의 천국’은 그 혜택을 과학자들에게 한정하지 않고, 경쟁주의와 성장주의로 끊임없이 압박받는 삭막한 ‘우리 삶의 터전과 일상’도 천국으로 바꾸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7 April 2010

배운 여성이 술 더 마신다

2010년 04월 06일

‘배운 여성이 술은 더 많이 마신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런던 정경대(LSE) 연구팀이 조사한 결과 교육을 많이 받은 여성일수록 술을 많이 마시며 음주로 인한 문제도 더 많았다”고 4일 보도했다. LSE는 영국 국민 가운데 1970년생 남녀 1만여 명을 대상으로 생활습관을 설문조사했다.

연구에 따르면 교육수준이 평균 이상인 여성은 평균 이하인 여성보다 음주량이 71% 더 많았다. 특히 대학을 졸업한 여성은 86%나 높았다. 교육수준이 높은 여성이 음주 문제를 일으킬 확률도 1.7배가 높았다. 남성 역시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술을 더 마시긴 했으나 여성만큼 상관관계가 높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상관관계만 놓고 보자면 여성의 음주량은 ‘떡잎’부터 알아볼 수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중상위권 성적을 얻은 여성은 그보다 낮은 여성보다 커서 매일 2.1배나 술을 더 많이 마셨다. 프란체스카 보르고노비 연구원은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은 △음주문화가 만연한 남성 중심 사회활동에 더 많이 노출되고 △자녀를 늦게 적게 가져 임신기간이 상대적으로 짧고 △중산층 이상 가정에서 자라 부모의 음주에 대한 혐오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여성이 학력이 높을수록 지속적인 음주로 문제를 일으키는 점은 되새길 만한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정양환 동아일보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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뭥미.... 영국의 여성이라고 말해줘....

잘못된 상관과 통계의 예가 되려구?

13 December 2009

"당신의 '적'은 진짜 '적'이 맞습니까?"

[철학자의 서재] 다비드 칼리의 <적>
기사입력 2009-12-12 오전 10:16:02

우리들의 전투 지침서

철학을 공부하는 내가 태어나서 가장 잘 한 일은 아이를 낳은 일이지 싶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너무 어렵지만 말이다. 오히려 아이가 어릴 적에는 아이를 키우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 몸이 피곤한 것 정도라 할까. 그러나 아이가 커 갈수록 아이를 통해 끊임없이 반성하는 '정신의 노고(勞苦)'를 하게 된다. 나는 세상 사람들을 위선 없이 대하고 있는가, 나의 가치관은 정말 온전한가 하는 반성이다. 특히 아이에게 책을 읽히며 나도 모르게 속물화되고 있는 나 자신을 추스른다.

아이가 글을 읽을 줄 알게 되어 동화책을 읽히게 되었을 때 그 동화책이 아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진리는 생각지도 못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진리는 바로 아이의 말 속에 있었던 것이다. 아이의 눈 속에 부처가 있고, 아이의 질문 속에 철학의 근본 물음들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어린 왕자> 바로 옆에 두기로 한 동화책은 다비드 칼리의 <적>(세르주 블로크 그림, 안수연 옮김, 문학동네 펴냄)이다. <적>은 전쟁 중에 사막 같은 곳에 고립된 어느 병사의 이야기이다. 이 병사는 참호 속에 홀로 숨어 있다. 그리고 저편에 적군의 참호가 마주하고 있다. '나'도 혼자고 적도 혼자이다. 둘 다 고립되어 있다. 그러나 둘은 전쟁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상부의 아무런 지시가 없는데도, 둘은 적대하고 있다.

둘의 적대 근거는 전투 지침서이다. 전투 지침서에는 적이 왜 적인가가 나와 있다. '적은 인간이 아니다. 아무 이유 없이 여자와 어린 아이를 죽였고, 그 때문에 전쟁이 벌어졌고, 적은 일말의 동정심도 없어서 우리를 죽이고 가족도 죽일 것'이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더 이상 버틸 수 없어서 숨어 들어간 적의 참호에서 적이 갖고 있던 전투 지침서를 읽게 된다.

적 또한 '나'를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적대시하고 있었다. 적의 지침서에도 '그는 인간이 아니다. 적은 아무 이유 없이 여자와 어린 아이를 죽였다'고 적혀 있는 것이었다. 적의 적은 곧 '나'인데, '나'는 여자와 어린 아이를 죽이지 않았는데 적은 '나'를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적에게도 가족 사진이 있고 돌아가고픈 고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괴물이라고 생각하며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사실은 모두 버젓한 인간이었다는 것이 이 동화가 들려주고자 한 이야기이다.

시인 고은은 <우주의 사투리>에서 "인류사는 전쟁사이기도 하다. 인간 혹은 인류가 살아오는 동안 평화보다 훨씬 많은 전쟁이 있어야 했다. 평화란 전쟁과 전쟁 사이의 그늘진 골짜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썼다. 그가 1998년의 '국제평화대회'에서 한 강연 원고, '예술은 평화를 지지한다' 중 일부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 말은 과장이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지속되고 있는 전쟁, 그리고 지금은 잠자고 있지만 우리 한반도에서 여전히 스멀거리고 있는 긴장. 이 부단한 전쟁이 다름 아니라 서로를 인간이 아니라고 본 탓에 이처럼 끝날 줄 모르고 있다면, 참호 속에서 떨고만 있을 일이 아니다.

나는 이 동화를 읽으며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떠올렸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은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악의 평범성에 관한 보고서>에서 언급한 개념이다. 이는 아렌트가 잡지사 기자로 일할 때 1960년에 예루살렘에서 열린 재판에서 본 것에 대한 기록이다. 이 재판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의 책임자 중 한명인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는 재판 과정에서 자신은 '명령받은 대로, 의무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며 오히려 '만일 명령대로 안 했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보며 아렌트는 극단적인 악인이 따로 있어서 악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근면하고 평범한 인간이 '시대적 범죄에 동참한 것', 즉 '시대적 악을 아무런 사유나 비판 없이 추종한 것'이 곧 '악의 평범성'이라고 비판했다. 아이히만이 이렇게 된 것은 '아무 생각 없음(thoughtlessness)' 탓이라고 아렌트는 진단한다.

비판적 사고 능력을 잃어버리면 누구라도 이렇게 될 수 있다. 사실을 정확히 확인하려는 태도가 없이 전쟁 지침서만을 따랐던 <적> 속의 병사는 전쟁 지침서에 그려진 '악 자체,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적'의 존재를 믿었다. 그러나 사실을 확인하고 보니 그런 악인으로서의 적은 없었고, 그저 '나'와 같은 평범한 존재만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악 그 자체로 알고 있던 자는 평범한 '나'를 악 그 자체로 알고 서로 총을 겨누고 있었다. 이런 비극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곧 허상을 벗고 실상에 다가가려는 비판적 사고이다.

참호에서 벗어나기

그 다음 우리는 전투 지침서를 누가 썼을까 하는 관심을 가져 보아야 할 것이다. 적의 전투 지침서와 '나'의 전투 지침서가 같다. 그 동일한 전투 지침서를 누가 썼을까? 나는 이 동화책이 구체적인 전쟁과 구체적인 병사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과 우리들 일상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을 만난다. 그리고 타인 속에서 산다. 우리는 이 타인을 친구이기보다는 적으로 생각한다.

적을 뜻하는 'enemy'는 어원상 'en'과 'emy'를 합한 말이다. 'en'은 무엇을 부정하는 뜻이고 'emy'는 친구, 사랑하는 사람을 뜻한다. '친구가 아닌 자'가 곧 적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진정한 친구나 우정을 지키기 어렵고 오히려 '프레너미(frenemy)'와 같은 신조어가 만들어지고 있다. '친구(friend)'와 '적(enemy)'을 합성한 말로 '친구인 척하나 알고 보면 적인 자'를 뜻한다. 일상에서 마주친 타인에 대해 전략적으로 행위하는 경우가 태반인 것이다.

위르겐 하버마스의 구분에 따르면 인간의 행위 중에는 의사소통적 행위와 전략적 행위가 있다. 가령 등산에서 만난 사람의 '힘드시죠?'라는 인사의 의도가 힘든 산행에 대해 공감을 나누는 데 있고 그 표현으로 건넨 인사라면, 이 인사 행위는 의사소통적 행위이다. 반면 '힘드시죠?'라는 인사 뒤에 뭔가를 팔려고 한다든가 하는 다른 숨은 의도가 있을 때, 이 인사 행위는 전략적 행위이다. 우리는 전략적 행위로 가득 찬 세상을 살고 있다. 전략적 행위로 가득 찬 세상에서 타인의 숨은 의도는 간파하고, 나의 숨은 의도는 교묘히 숨기면서 나의 의도를 관철시킬 수 있는 전술, 즉 '처세술'은 초미의 관심사로 되어 있다.

다시 물음으로 돌아가서, 우리의 가슴에 품은 전투 지침서는 누가 건네 주었을까? 그것을 건넨 자는 어떤 권력자나 어떤 특정한 기관이 아니다. 바로 팍팍한 세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지상 명령 자체이다. 나의 전략적 행위의 대상이 되는 타인은 내가 딛고 서야 할 수단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내 수단으로 대면한 상대방을 나와 똑같은 사람, 나의 친구로 생각한다면 나는 그를 도저히 수단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때 내 안에서 '적'이 제조된다. '그는 나와 다르고, 그는 다르기 때문에 싫고, 그는 싫기 때문에 악하다. 그는 악하기 때문에 무자비하며, 무자비한 그는 무슨 짓이든 할 것이기 때문에 그는 사람이 아니다.' 이런 일련의 추론은 다비드 칼리의 <적> 속에 적혀 있는 전투 지침서를 그대로 닮아 있다.

내가 이렇게 추론하고 있는 사이 뉴스 보도가 울린다. '엘리베이터 성 추행, 테러, 신종 플루 창궐…….' 뉴스가 귀에 들릴 때마다 길에서 마주친 타인은 내게 추행을 할 수 있고 테러를 가할 수 있고 병을 옮길 수 있는 적이라는 확신이 생긴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유동하는 공포>에서 '우리 시대의 열린 사회에 깃든 가장 사악한 악령은 공포'라고 말한다. '그 공포를 낳고 기르는 것은 현대의 불안과 미래의 불확실성'으로서 공포는 '우리가 통제력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무력감'으로 인해 증폭된다고 말한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 보면 그가 말하는 사태가 쉽게 공감된다.

"상대가 혹 배신할까 봐 마음을 놓을 수 없고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들. 그런 이유로 우리는 더 넓은 친구와 동지 관계의 네트워크 형성에 급급해 한다. 저마다 휴대폰의 주소록에 갈수록 더 많은 네트워크를 구축해 나가려 하기에 새 휴대폰 모델이 나올 때마다 전보다 커진 주소록 공간을 제공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저마다 배신에 대비해 '양다리를 걸치는' 수법으로 리스크를 줄이려 하는데, 그것은 결국 리스크를 키우며 배신을 평범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바우만의 진단에 따르면 '유동적 공포'의 근원은 우리의 기술 문명과 전지구화된 자본주의이다. 우리의 기술 문명과 전지구화된 자본주의는 불확정성과 통제 불능성을 키운다. 그리고 이것은 공포를 낳는다. 바우만이 여기에 '유동적(liquid)'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이 공포가 액체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며 곳곳에 스며들기 때문이다. 유동적 공포에 사로잡힌 이들이 하는 선택은 바로 '배신의 평범화',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적'이 되는 것이다.

하버마스가 전략적 행위로 가득찬 세상에서 의사소통적 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하버마스의 철학은 '동화(fairy tale)'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 말 그대로의 동화를 통해 결국 진리는 어린이의 눈 속에 있지 않은가라는 말을 하고 싶다. 유동적이기 때문에 더 공포스러운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우리가 적이 아니라 친구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리라. <적>에서 참호 속에 숨어 있던 병사가 적의 참호로 숨어 들어가 그도 나와 같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둘은 적대 관계를 벗어나려는 의지를 가질 수 있었다.

참호 바깥으로 무장해제하고 나온다면 어쩌면 우리의 문명은 조금 덜 발전할지도 모르고 우리의 부(富)는 조금 줄어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대가로 우리는 불안을 벗어 던지고 아이처럼 해맑게 어깨동무할 수 있다.

나의 아이들은 <적>을 읽고 재밌다고 했다. 이 동화가 왜 재밌냐고 물었더니 아이들은 적이 적이 아닌 게 좋다고 한다. 그리곤 우리도 북한 사람들을 괴물로 생각했지 않았냐고 한다. 그런데 새터민을 보니 우리랑 똑같더라며 웃는다. 그리곤 전쟁은 나쁘고 사람은 서로 같은데 왜 이라크에 파병을 했고 왜 또 아프가니스탄에 파병을 하는 거냐고 묻는다. 나는 '그러게 말이다'라고 답한다.

'철학자의 서재'는 <프레시안>과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서평 연재입니다. 매주 주말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철학자들이 심사숙고해 선정한 책을, 철학자가 직접 심혈을 기울여 쓴 서평으로 소개합니다. <편집자>


/박민미 동국대학교 강사 필자의 다른 기사

7 December 2009

코펜하겐은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을까

오늘 유엔기후변화협약 총회 열려

2009년 12월 04일

기후변화로 ‘녹는 사람들‘ 독일 베를린 젠다르멘 마르크트 광장에 사람 모양의 얼음조각상들이 등장했다. 브라질 예술가가 만든 1000개의 얼음조각상은 2일 낮 12시에 설치돼 30분 만에 모두 녹았다. 독일 세계자연보호기금(WWF)이 북극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강조하기 위해 마련한 행사다. 출처:베를린=로이터 연합뉴스

“앞으로 2~3년 간 행동이 미래를 결정할겁니다.”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 라젠드라 파차우리 위원장의 최근 발언이다. 2012년 만료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신할 새로운 기후협약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1997년 채택된 교토의정서는 2012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수준보다 5% 줄이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위해 7일부터 18일까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가 열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원자바오 중국 총리 등 100여 개 국가 정상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번 총회에서 각 국은 ▲합리적인 온실가스 감축량을 제시하고 ▲후진국의 기후변화 참여를 돕기 위한 지원금 마련 ▲탄소배출권 거래제 도입 등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나라마다 다른 실행방안…협상은 꼼수?

그러나 길은 순탄치 않아 보인다. 우선 세계에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빅5(중국, 미국, EU, 인도, 브라질)’가 온실가스 감축량을 세운 건 희망적이지만 감축기준이 달라 혼선이 일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 감축’이란 목표는 같지만 실행방안이 다른 것이다.

세계에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라인 ‘지구의 공장’ 중국은 국제 사회의 책임론이 거세지자 국내총생산(GDP) 단위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05년 대비 40~45%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인도는 GDP 단위당 배출량의 20~25%를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경제발전에 해가 된다며 교토의정서를 탈퇴했던 미국은 고심 끝에 온실가스 방출량을 2005년 대비 17~20%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호주는 2005년 대비 30%, 캐나다는 20%를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러시아는 1990년 대비 25% 줄이겠다고 했다.

브라질은 2020년까지 경제가 평균 4~6% 성장하는 것을 전제로, 2020년 온실가스 배출전망치 대비 36~38%를 줄이겠다고 했다. 한국 역시 2020년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의 30%를 감축하겠다고 공언했다.

중국과 인도는 GDP 단위당 배출량, 미국과 캐나다는 배출 총량, 브라질과 한국은 배출전망치 대비 감축 목표를 내놓은 셈이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윤순진 교수는 “한국과 러시아의 감축량이 많아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가정이기 때문에 배출전망치를 높게 잡으면 상대적으로 여유가 생긴다”며 “배출량 감축 기준이 각 국가마다 다른 건 자국의 이해에 바탕을 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이어 “코펜하겐 회의에서 교토의정서와 같은 명확한 합의가 나오기 어렵다고 보는 전망이 많다”면서도 “기후변화의 부정적인 영향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각 국가가 자신의 이해를 계속 주장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선진국 지원 약속 실상은 속빈 강정

UNFCCC은 개발도상국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매년 1000억 달러(약 115조원) 규모의 막대한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개발도상국은 이른 시기에 산업발전을 이룩한 선진국이 지구온난화의 책임이 큰 만큼 상당 부분을 선진국이 내야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또 개발도상국이 환경규제 등 기후변화 대응에 참여함에 따라 입게 되는 손실분에 대해 선진국이 기술·자금 등으로 보상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 131개 개도국 모임인 ‘77그룹’은 선진국들이 GDP의 1%를 출연해 개도국의 친환경기술 지원과 환경보호에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겉으로는 선진국도 이에 동의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속빈 강정’같은 선언적 수준에 그친다. 지난달 25일 영국 BBC는 “2000년 EU 15개국과 캐나다, 노르웨이 등 20개국이 독일 도시 본에서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매년 4억1000만 달러를 출연해 후진국의 기후변화 적응을 돕는데 쓰기로 했지만 실제 모인 돈은 2억6000만 달러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선진국이 책임을 분명히 지지 않으면서 후진국에게 책임을 전가하려 한다는 반발도 나온다. 실제 이달 2일 중국과 인도 등 주요 개도국은 2050년까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을 반으로 줄이자는 덴마크의 제안을 거부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기후변화협상대표 알프 윌스는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자는 안은 개도국이 그만큼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보 드 보어 UNFCCC 사무총장은 “현재 인도에서만 4억 명이 전기를 쓰지 못하는데 절대적 기준을 가지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으로 감축하라고 하면 8억 명이 전기를 사용하지 못할 것”이라며 “합리적이지 않다”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감축목표 제시보다 근원적 처방 찾아야

일각에서는 코펜하겐 협상이 결렬돼야 한다는 급진적 주장도 나온다.

저명한 기후학자인 제임스 한센 박사는 이달 2일 영국 일간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접근 자체가 잘못 됐기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한센 박사는 미국 뉴욕에 있는 미국항공우주국(NASA) 고다드 연구소장이다.

그는 “기후변화는 미국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직면했던 노예제와 영국 수상 윈스턴 처질이 부딪혔던 나치즘과 유사하다”며 “노예 수를 50%나 40% 줄이자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언제까지 몇 % 감축하겠다는 목표에서 벗어나 ‘근원적 처방’을 내놔야 한다는 것이다.

한센 박사는 이어 “중세 시대 가톨릭의 주교는 면죄부를 팔아 돈을 벌고 죄인은 사면을 받았다”며 “탄소배출권 거래는 개도국이 돈을 받고 선진국에게 면죄부를 파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변태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xrockism@donga.com

로봇 물고기가 4대강을 지킬 수 있을까

아직 실험실 수준, 상용화까지 갈 길 멀어

2009년 12월 04일

영국 에섹스 대학 연구팀이 개발한 로봇 물고기. 이를 바탕으로 에섹스 대학과 기술회사인 BMT는 수질오염원 탐색용 로봇 물고기를 만들고 있다.

‘로봇 물고기’가 화제다. 지난달 27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이를 언급하면서부터다. 4대강 사업으로 수질악화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은 “우리 기술이 발달해 수질오염 정도는 방지할 수 있다”며 로봇 물고기를 들고 나왔다. 이후 로봇 물고기는 국회에서도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갑자기 정치적 뭇매를 맞게 된 로봇 물고기는 대통령의 말처럼 우리 4대강의 수질을 지켜줄 수 있을까. 정치적인 논란을 떠나 로봇 물고기가 어느 수준까지 발전했는지 알아보자.

○ 올 3월, 영국서 세계 최초 프로젝트 시작

수질오염 방지를 위한 로봇 물고기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게 아니다. 올해 3월, 영국에서 수질오염을 감시하는 로봇 물고기를 개발한다는 소식이 처음 나왔다. 영국의 한 연구팀이 로봇 물고기를 스페인 북부 히혼(Gijon)항 앞바다에 풀어 수질 오염원을 탐색하겠다는 것이다. 잉어처럼 생긴 이 로봇 물고기는 진짜 물고기처럼 움직이며 물속을 돌아다닌다. 화학 센서를 달아 선박이나 해저 파이프라인 등에서 새어나오는 오염 물질을 파악한다. 정보교환을 위해 무선통신 장비도 붙어 있다.

로봇 물고기 개발 프로젝트는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영국 에섹스 대학의 훠셩 후(Huosheng Hu) 교수팀과 BMT라는 기술회사가 공동으로 진행한다. 지난 상반기에 EU의 지원을 받아 시작된 3년짜리 프로젝트다.

현재 연구팀은 로봇 물고기를 제작 중이며 2010년 말쯤 히온항에 시험 방류할 계획이다. 따라서 실제 강이나 바다에서 돌아다니는 로봇 물고기는 아직 없다. 수질 오염원을 탐색하는 로봇 물고기의 상용화는 앞으로도 대략 3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개발팀은 발표 과정에서 자신들의 프로젝트가 ‘월드 퍼스트’임을 강조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얘기되는 수질오염 탐색 로봇 물고기에 대한 신상명세도 바로 이 로봇 물고기를 근거로 한다.

영국이 개발하는 로봇 물고기는 몸길이가 무려 1.5m로 물개크기만 하다. 개발팀이 제시한 몸값은 2만 파운드, 우리나라 돈으로 4000만 원 정도다. 가격이 만만치 않아 혹시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 아직은 실험실 수돗물에서 노는 수준

로봇 물고기 연구를 처음 시작했던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팀은 올해 8월 크기와 가격 문제를 해결했다며 로봇 물고기를 10여개 내놓았다. MIT의 최신형 로봇 물고기는 몸길이가 한 손에 들 수 있을 정도인 13∼20cm 정도다. 몸값도 수백 달러밖에 안 된다. MIT 연구팀은 이런 로봇 물고기는 몇 개쯤 잃어버린다고 해도 큰 손해를 보지 않는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MIT 연구팀은 자신들의 로봇 물고기를 언제쯤 실전에 투입할 수 있을지는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언젠가는 해양의 오염물질을 탐지하고 해저 지형을 파악하는데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

MIT의 로봇 물고기 역시 아직은 실험실 밖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 로봇 물고기들은 수돗물이 담긴 실험실 수조에서 놀고 있을 뿐이다. 사실 수돗물조차도 각종 기계장치가 들어있는 로봇에겐 안 좋다. 수돗물이 부식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MIT의 최신 로봇 물고기들은 폴리머로 제작, 이음새가 없어서 부식의 위험성을 많이 줄였다. 그러나 실제로 로봇 물고기가 이겨내야 할 환경은 수돗물이나 잔잔한 수조 수준이 아닌 거친 ‘실제 상황’이다. 게다가 로봇 물고기가 바닷물이나 강물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하려면 배터리를 비롯해 무선통신장비 등이 들어있어야 한다. 아직 MIT의 물고기들은 전선으로 연결된 외부 전원으로 작동될 뿐이다.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한국기계연구원의 한 연구원이 “현재는 (로봇 물고기가) 50cm 정도로 설계됐고 앞으로 1m 이내로 개발될 예정”이라며 “3년 이내 상용제품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세계적인 수준에서 비춰볼 때 너무 낙관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게다가 국내에서 로봇물고기가 처음으로 개발된 것은 불과 3년 전인 2006년이다. 경쟁국에 비해 최근에 뛰어든 것이다.

○ 11월, 미국에서도 프로젝트 시작

로봇물고기는 실망스러운 수준이기는 해도 짧은 역사에 비하면 많이 진화한 것이다. 1994년 MIT가 세계 최초로 내놓은 참치를 모방한 로봇 물고기는 몸길이가 1.2m에 무려 2843개의 부품으로 이뤄져있고 6개의 모터로 작동됐다. 이에 비해 최신형은 부품이 10개도 안되고 모터도 하나다.

고작 15년 정도의 개발기간으로 가장 오랜 진화 역사를 가진 척추동물인 진짜 물고기를 따라잡기는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진짜 물고기는 적은 에너지로도 순식간에 몸을 이동할 수 있고 속도도 빠르다. 물고기는 1초에 몸길이의 10배 정도 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 반면 1초에 자신의 몸길이 이상을 가는 로봇 물고기는 아직 없다. 영국이 개발 중인 1.5m 길이의 로봇 물고기는 1초에 약 1m를 헤엄쳐나갈 것이라고 한다.

진짜 물고기의 또 다른 놀라운 능력은 기동성이다. 물고기는 몸길이의 10분의 1의 거리만 있어도 반대로 회전해 뒤돌아갈 수 있다. 반면 인간이 개발한 잠수함은 속도를 늦춰서 회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10배 정도의 거리가 필요하다.

그러니 과학자들이 물고기를 닮은 로봇을 개발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올해 11월, 미국에서 새로운 수질오염 탐색용 로봇 물고기 개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미시건 대학의 연구팀이 이 프로젝트로 미과학재단(NSF)의 지원을 따낸 것이다. 이 대학 연구팀은 “로봇 물고기는 이전에 가능하지 않았던 수준의 데이터를 제공할 것”이라면서 자신들의 로봇 물고기가 새로운 차원의 환경 모니터 체계를 불러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미용 동아사이언스 객원기자 pmiy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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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재미있지 않아?

누가 얘기했을까?

실용화될까?

그리고 지지해 줄까?

그리고 일선의 과학 연구 성과가 이렇게 급작?스럽게 정치와 맞물려 돌아간다니 신기해~

5 December 2009

"북한군(軍), 주민 소요 우려 전투준비"

강철환 기자 nkch@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안용현 기자 ahnyh@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김일성 얼굴 담긴 옛 화폐, 찢겨진 채 돌아다녀…
러시아 유력 경제紙 보도…
중산층 탈북 행렬 막으려 발견하면 즉시 발포 명령
북한 군이 최근 단행된 화폐개혁에 반발해 소요 사태가 일어날 경우에 대비한 전투준비 상태에 들어갔다고 4일 러시아 경제 일간지 코메르산트가 북한 내 외교 소식통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북한 여러 도시에서 이번 화폐 개혁을 '강도(强盜)와 같은 정책'이라며 비판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기 때문에 당국이 이런 지시를 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소식통들은 또 화폐 개혁 기간 북한의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아야 하고 주민들은 그동안 모아뒀던 돈을 쓸 수 없게 되면서 크게 당황하고 있다면서 북한에 파견된 많은 외교관들이 북한 당국의 화폐 개혁을 되돌리려고 여러 모임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 내부 소식통들에 따르면 최고 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는 최근 북·중 국경 인민경비대에 "허락 없이 국경을 넘는 자들은 현장 사살해도 된다"는 발포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화폐 개혁과 관련된 '불순 세력들의 도주'를 막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소식통은 "갑자기 돈을 빼앗긴 능력 있는 중산층이 탈북 행렬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정보 당국자는 "현재 집단 소요나 대량 탈북 등의 첩보는 없다"며 "북한 주민들은 집단행동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상황이 악화되면 시위보다 탈북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했다.

함북 청진, 함남 함흥, 평남 평성 등에선 김일성 사진이 담긴 옛 화폐(5000원권)가 오물에 훼손되거나 찢긴 채 발견돼 보위부가 비상에 들어갔다고 한다. 김정일을 비난하는 낙서와 삐라(전단)도 나돌기 시작했다고 내부 소식통은 전했다. 북한 전문 매체인 데일리NK는 이날 "양강도에서 화폐 개혁 이후 한 채무자(빚꾼)가 갑자기 채권자(돈주)에게 '옛날 돈으로 빚을 갚겠다'고 우기며 싸우다가 채권자에게 맞아 죽은 사건이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신의주의 한 장마당에선 화장품 장사를 하던 40대 중반 여성이 당국을 비난하는 소리를 지르다가 보안원에게 체포됐다는 소식도 있다.

북한 주민들은 화폐 개혁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돈을 잘 교환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당국은 한 가구당 10만원(신권 1000원·우리 돈 4만~5만원) 수준이던 교환 한도를 늘려 1인당 5만원씩 더 바꿀 수 있도록 하는 등 주민 불만을 무마하기 위한 후속 조치를 내놓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6일까지 화폐 교환을 끝낼 계획이었지만 3일 현재 함북 회령·무산 등에는 신권이 도착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교환 시기를 '신권 도착 후 1주일'로 바꿨다고 내부 소식통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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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지내서 나도 이상해 지는 걸까?

이 보도는 좀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북한 얘기 뿐만 아니라 어째 정치권은 똑같이 황당하고 웃기는지 모르겠다.

25 August 2009

美 세계최대 ‘특허 괴물’ “삼성-LG에 소송 검토중”

“사용료 안내면 수천억원대 소송 제기할 수도”

2009년 08월 25일


휴대전화 특허 침해를 이유로 지난해부터 삼성전자와 LG전자에 수천억 원의 사용료를 요구해 온 미국 인텔렉추얼 벤처스(IV)가 협상에 진전이 없을 경우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의 특허전문회사 또는 ‘특허괴물(Patent Troll)’로 불리는 이 회사가 소송 가능성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동아일보 산업부가 이달 3, 4일 미국 워싱턴 주 벨뷰 시에 있는 IV의 본사와 연구소를 단독 취재하면서 확인한 내용이다. 2000년 마이크로소프트(MS) 출신인 에드워드 정과 네이선 미어볼드 등 4명이 공동 설립한 IV는 50억 달러(약 6조2500억 원) 펀드를 운용하며 정보기술(IT), 바이오, 에너지 등 유망 분야의 특허 2만7000여 건을 확보해 놓고 있다. MS, 인텔, 노키아, 소니, 애플 등 글로벌 기업이 주요 투자자로 있으며 빌 게이츠 전 MS 회장도 투자자 및 발명가로 참여하고 있다.

에드워드 정 회장은 “(삼성, LG가) 사용료 협상에 응하지 않으면 피해를 보는 발명가들을 위해서라도 법정에 가야 한다”면서 “한국의 대기업들은 발명가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해주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LG전자는 IV가 요구하는 막대한 로열티 요구에 응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삼성 관계자는 “IV가 특허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주지 않고 있으며, 특허 사용료뿐 아니라 1조 원이 넘는 투자금을 내고 투자자로 참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허 전문가들은 IV 등장을 계기로 주식과 채권 대신 아이디어와 특허 등 지식자산에 투자하는 ‘발명 자본주의(Invention Capitalism)’가 활성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2000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220여 개의 특허전문회사가 활동하면서 지식자산에 대한 투자가 크게 늘고 있다. 특허권자의 권리를 찾기 위한 소송도 2003년 9445건에서 2007년 1만9537건으로 급증했으며, 이 가운데 특허전문회사가 소송을 제기한 것이 약 2540건(13%)에 이른다. 특허전문회사들의 활동을 통해 발명과 혁신을 장려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강화되는 등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이런 회사들이 ‘특허 알 박기’ 식으로 핵심 아이디어를 선점해 기업의 생산 활동을 저해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보다 특허로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는 점에서 ‘특허괴물’과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정부도 서둘러 대응에 나섰다. 특허청 등은 최근 5000억 원의 특허펀드를 조성해 지식재산 보호와 산업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일본도 2000억 엔(약 2조6200억 원)의 펀드를 조성해 자국 특허를 보호한다는 방침이다. 특허를 둘러싸고 특허전문회사와 기업, 국가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글로벌 지식재산 전쟁이 예상된다.

벨뷰=김용석 동아일보 기자 nex@donga.com

::특허괴물

생산, 서비스 제공을 하지 않고 특허료만으로 돈을 버는 회사. 소송 등으로 기업을 괴롭혀 ‘특허괴물’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특허전문회사, 지식재산관리회사(NPEs)라고도 부른다. IV, 인터디지털 등 세계적으로 220여 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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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어찌될지 궁금하다...

30 July 2009

"정말 좋은 학자가 행정에 매여 슬픈 현실"

인지과학계 28일 별세한 故 김영정 서울대 교수 추모

2009년 07월 29일

28일 김영정 서울대 입학관리본부장(철학과 교수)의 갑작스런 타계에 인지과학계는 안타까움에 빠졌다.

전 한국인지과학회장을 지낸 성균관대 이정모 교수는 29일 지인들에게 보낸 e메일 서신에서 “정말 좋은 학자가 행정 일에 매여서 학문적 탐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을 보면서 국내 대학의 학생 선발 구도를 설계하는 일이 학문적 발전에 과연 우선하는 일이었는지 의심하게 됐다”며 “한국의 인지과학계는 좋은, 가능성이 많은 학자 한 분을 잃었다”며 애석해했다.

고인은 뇌 연구가 전무하던 1986년 대우재단의 지원을 받아 국내에서 처음으로 인지과학 공동연구모임 설립을 주도했다. 당시 미국 브라운대에서 박사학위를 막 받고 돌아와 외대 교수로 활동하던 고인은 해외 연구 동향을 누구보다도 많이 알던 학자로 손꼽혔다.

고인은 격주 주말 저녁마다 열린 토론회에서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되던 용어를 통일하는 한편 학제간 연구의 가능성을 찾는데 큰 자극제가 됐다고 당시 모임에 참여했던 학자들은 기억한다. 이 교수는 “명쾌한 분석적 사고와 해박한 심리철학 지식을 갖고 있던 몇 안 되던 연구자였다”며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주장과 생각에 귀를 기울이는 촉망받던 학자”라고 회고했다.

1987년 한국인지과학회가 결성되면서 고인의 노력은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매월 열리는 인지과학 월례회를 비롯해 인지과학회 학술모임이 잇따라 결성되는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고인은 인지과학 불모지를 극복하기 위해 출판에도 매달렸다. 1987년 인지과학 분야의 입문서 격인 ‘인지과학입문’이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출판부에서 출간되자마자 이를 번역해 인지과학계와 학생들에게 보급하는 일에 앞장섰다.

그뒤 번역한 ‘표상과 실재’를 비롯해 직접 지은 ‘심리철학과 인지과학’ ‘언어 논리 존재’ 등 저서는 철학과 인지과학을 연결한 계기를 만든 학술 서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인은 한국 학생들의 분석력과 논리적 사고를 향상시키기 위한 연구 프로젝트에도 앞장섰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논리 교실 필로지아’ CD는 지금도 인지과학자들의 애장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2002년 한국인지과학회장에 선임된 고인은 한국인지과학회 행사를 최초로 지방인 부산에서 개최하는 등 누구보다도 지방 학술 진흥에 관심을 쏟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달 정년을 앞두고 있는 이 교수는 “3년 전 나중에 뇌와 몸과 환경의 통합적 연결 활동을 함께 연구해보자는 얘기를 끝으로 고인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며 “학교 보직을 끝내면 함께 연구를 하려고 했지만 이제는 더는 할 수 없게 됐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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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안타깝다.

아....

7 November 2008

한미FTA 연내 비준 `빨간불`… 국내 `선 비준론` 부상

박상현 기자 psh21@dt.co.kr 입력: 2008-11-06 20:44
보호주의 정책 분야별 선별 규제 가능성
당장은 통상보다 국내 경제에 집중 예상

■ 미국의 선택 '오바마 시대'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의 당선으로 향후 미국 통상정책 기조에 커다란 변화가 예고되면서 한미간 통상환경에도 적지 않은 변화의 파고가 휘몰아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정부와 여당, 재계가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한미 FTA는 양국간 통상 관계의 최대 분수령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당선인측의 구체적인 상황변화가 아직 감지되지 않고 있어 예측이 불가능하다. 이로 인해 국내 정치권에서는 `선비준' 문제를 놓고 여야간 논란이 첨예화하고 있다.그러나 오바마 후보가 그동안 내걸었던 `보호무역, 공정무역' 공약을 감안하면 연내 한미 FTA 비준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한미 FTA, 전략적 접근 필요=오바마 당선인은 부시 공화당 정권의 경제정책 기조인 `기업, 시장, 성장, 자유무역'과는 반대 노선인 `노동, 규제, 분배, 공정무역'으로 정책의 중점을 이동시킬 것이 확실시된다. 오바마 후보는 통상ㆍFTA 관련한 공약에서 `미국의 경쟁력 강화, 민주ㆍ균등ㆍ지속가능한 세계경제성장 기반조성'을 핵심 모토로 삼고 있다.
FTA별로 환경보호와 식품안전, 보건 부문의 일정 달성 목표를 내걸고 협상 결과가 이에 미치지 못할 경우 재협상을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한미 FTA 협상시 미국측 파트너였던 무역대표부(USTR)의 조직과 인력을 강화해 미국 근로자의 이해를 보호하고 노동과 환경이 강화된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특히 오바마는 한미 FTA 협상 결과에 대해 자동차, 쌀, 쇠고기 등 핵심품목의 개방기준에 대해 불만족스럽다며 반대입장을 밝힌 바 있어 재협상 요구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문제로 인해 한미 FTA 비준에 대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동용승 수석연구원은 "오바마는 단정적으로 한미 FTA 협상 결과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으며 특히 자동차 부문의 재협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전제한 뒤 "미국 상황을 예의주시하되 미국 의회의 비준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라도 연말 경 비준동의안 처리를 전략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 국회의 비준은 미국에 외교적 부담을 줘 새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이를 쉽사리 바꿀 수 없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오바마 당선인이 집권 기간 내내 보호무역주의를 구사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코트라는 6일 오바마의 통상 정책에 대해 미국 저명인사들과 인터뷰한 결과를 담은 보고서에서 "정권 초기에는 국내 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에 통상에 신경 쓸 여지가 줄어들고 설령 보호주의 정책이 실시되더라도 선별적 규제를 적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임기 중반기에 접어들면 자유무역 정책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코트라의 김준규 구미팀 과장은 "보호무역주의 정책은 모든 품목에 대해 무작위로 적용되지 않고, 민주당 의원들이 더 관심을 보이는 산업들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자유무역주의 성향을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주당 의원들이 관심을 보일 테마는 친환경과 에너지 절감이며 이와 함께 생산성과 제품사용 효율성을 높여줄 자동화 신기술 개발일 것으로 예상됐다.

◇ITㆍ재생에너지 사업 기회요인 크다=한편 오바마의 당선이 우리나라 주요 산업별로 대미 수출과 투자유치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히려 미국의 경기침체 정도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산업별로는 IT와 재생에너지 산업에는 기회요인이, 반면 자동차와 철강, 섬유산업은 위협요인이 더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IT, 전력기자재, 재생에너지 분야는 미 정부의 일자리 창출 노력과 산업지원이 늘어나고 시장이 확대된다는 점에서 이같은 낙관적인 전망이 나온다. 오바마 당선자는 인프라 확충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면서 전미 지역에 차세대 초고속 정보통신망을 설치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었다. 통신케이블 업체들은 전력시설 확충에 따라 전력기자재 수요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장기 성장동력 확충을 강조하는 오바마의 공약대로 연구개발(R&D) 세액공제를 영구화하고 미국 전지역에 차세대 브로드밴드를 설치한다면 이것 역시 한국 기업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 행정부에 이어 제2의 IT붐이 조성될 수 있다는 희망 섞인 전망도 여기서 비롯된다.
또 미 의회를 통과한 구제금융법안에 재생에너지 인센티브 연장안이 포함돼 있어 미국의 재생에너지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부시 정부가 바이오 에탄올에 초점을 맞춘데 반해 오바마 정부는 대형버스나 트럭에 주로 사용돼 공공부문에 미치는 영향이 큰 바이오 디젤에도 큰 관심을 가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는 상대적으로 바이오 디젤 분야에 대한 연구와 투자가 많이 이뤄지는 한국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며 이에 따라 미국 바이오 디젤 연구소나 관련 기업과 협력방안을 추진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반면 자동차, 철강, 섬유산업은 한국 기업에 그리 우호적인 여건이 전개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정부가 자국 자동차산업에 대해 강력한 지원정책을 수립함에 따라 미국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이 높아질 경우 지난해 우리나라의 자동차 미국 수출은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코트라 관계자는 "최근의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로 인해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자국 노동자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크다"면서 "보호무역의 주요 타깃은 중국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우리 역시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