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04일
“앞으로 2~3년 간 행동이 미래를 결정할겁니다.”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 라젠드라 파차우리 위원장의 최근 발언이다. 2012년 만료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신할 새로운 기후협약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1997년 채택된 교토의정서는 2012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수준보다 5% 줄이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위해 7일부터 18일까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가 열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원자바오 중국 총리 등 100여 개 국가 정상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번 총회에서 각 국은 ▲합리적인 온실가스 감축량을 제시하고 ▲후진국의 기후변화 참여를 돕기 위한 지원금 마련 ▲탄소배출권 거래제 도입 등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나라마다 다른 실행방안…협상은 꼼수?
그러나 길은 순탄치 않아 보인다. 우선 세계에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빅5(중국, 미국, EU, 인도, 브라질)’가 온실가스 감축량을 세운 건 희망적이지만 감축기준이 달라 혼선이 일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 감축’이란 목표는 같지만 실행방안이 다른 것이다.
세계에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라인 ‘지구의 공장’ 중국은 국제 사회의 책임론이 거세지자 국내총생산(GDP) 단위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05년 대비 40~45%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인도는 GDP 단위당 배출량의 20~25%를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경제발전에 해가 된다며 교토의정서를 탈퇴했던 미국은 고심 끝에 온실가스 방출량을 2005년 대비 17~20%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호주는 2005년 대비 30%, 캐나다는 20%를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러시아는 1990년 대비 25% 줄이겠다고 했다.
브라질은 2020년까지 경제가 평균 4~6% 성장하는 것을 전제로, 2020년 온실가스 배출전망치 대비 36~38%를 줄이겠다고 했다. 한국 역시 2020년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의 30%를 감축하겠다고 공언했다.
중국과 인도는 GDP 단위당 배출량, 미국과 캐나다는 배출 총량, 브라질과 한국은 배출전망치 대비 감축 목표를 내놓은 셈이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윤순진 교수는 “한국과 러시아의 감축량이 많아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가정이기 때문에 배출전망치를 높게 잡으면 상대적으로 여유가 생긴다”며 “배출량 감축 기준이 각 국가마다 다른 건 자국의 이해에 바탕을 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이어 “코펜하겐 회의에서 교토의정서와 같은 명확한 합의가 나오기 어렵다고 보는 전망이 많다”면서도 “기후변화의 부정적인 영향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각 국가가 자신의 이해를 계속 주장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선진국 지원 약속 실상은 속빈 강정
UNFCCC은 개발도상국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매년 1000억 달러(약 115조원) 규모의 막대한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개발도상국은 이른 시기에 산업발전을 이룩한 선진국이 지구온난화의 책임이 큰 만큼 상당 부분을 선진국이 내야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또 개발도상국이 환경규제 등 기후변화 대응에 참여함에 따라 입게 되는 손실분에 대해 선진국이 기술·자금 등으로 보상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 131개 개도국 모임인 ‘77그룹’은 선진국들이 GDP의 1%를 출연해 개도국의 친환경기술 지원과 환경보호에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겉으로는 선진국도 이에 동의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속빈 강정’같은 선언적 수준에 그친다. 지난달 25일 영국 BBC는 “2000년 EU 15개국과 캐나다, 노르웨이 등 20개국이 독일 도시 본에서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매년 4억1000만 달러를 출연해 후진국의 기후변화 적응을 돕는데 쓰기로 했지만 실제 모인 돈은 2억6000만 달러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선진국이 책임을 분명히 지지 않으면서 후진국에게 책임을 전가하려 한다는 반발도 나온다. 실제 이달 2일 중국과 인도 등 주요 개도국은 2050년까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을 반으로 줄이자는 덴마크의 제안을 거부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기후변화협상대표 알프 윌스는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자는 안은 개도국이 그만큼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보 드 보어 UNFCCC 사무총장은 “현재 인도에서만 4억 명이 전기를 쓰지 못하는데 절대적 기준을 가지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으로 감축하라고 하면 8억 명이 전기를 사용하지 못할 것”이라며 “합리적이지 않다”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감축목표 제시보다 근원적 처방 찾아야
일각에서는 코펜하겐 협상이 결렬돼야 한다는 급진적 주장도 나온다.
저명한 기후학자인 제임스 한센 박사는 이달 2일 영국 일간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접근 자체가 잘못 됐기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한센 박사는 미국 뉴욕에 있는 미국항공우주국(NASA) 고다드 연구소장이다.
그는 “기후변화는 미국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직면했던 노예제와 영국 수상 윈스턴 처질이 부딪혔던 나치즘과 유사하다”며 “노예 수를 50%나 40% 줄이자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언제까지 몇 % 감축하겠다는 목표에서 벗어나 ‘근원적 처방’을 내놔야 한다는 것이다.
한센 박사는 이어 “중세 시대 가톨릭의 주교는 면죄부를 팔아 돈을 벌고 죄인은 사면을 받았다”며 “탄소배출권 거래는 개도국이 돈을 받고 선진국에게 면죄부를 파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변태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xrock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