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February 2011

더워졌기 때문에 추워졌다고?

[S&T 포커스 집중기획]지구온난화와 북반구 한파

2011년 02월 15일

올 겨울 북반구에는 이상한파가 몰아쳤다. 연말연초 영국을 비롯한 서유럽에는 집중 폭설이 쏟아져 항공편의 발이 묶였다. 루이지애나, 플로리다 등 일년 내내 따뜻한 기후인 미국 남부에도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 중국은 네이멍구 등 북부지역에 영하 40도를 밑도는 추운 날씨가 이어지면서 가축들이 떼죽음 당하고 있다.




겨울 날씨가 심상치 않다. 일기예보에서 알려주는 기온은 좀처럼 영상으로 올라가지 않는다. 한반도만의 일이 아니다. 올겨울은 동아시아, 유럽, 북미의 동부 지역 등 북반구 거의 대부분이 평년에 비해 극심한 추위에 시달린다. 올해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겨울은 올겨울보다 더 혹독했다. 서울 도심에서 스노보드를 타는 사람이 등장할 정도로 폭설까지 겹치면서 수도권 전체의 교통이 마비되는 등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겨울 날씨는 몹시 추워졌지만 역설적이게도 유엔 산하 세계기상기구(WMO)는 2010년이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따뜻했던 해라고 발표했다. 작년 12월에는 북극의 얼음 두께가 역사상 가장 얇아질 정도였다고 한다. 러시아는 아예 열파(heat wave)가 몰아닥쳐 혹독한 가뭄에 시달릴 정도였다. 2010년은 열탕과 냉탕을 왔다갔다한 한 해인 셈이다. 지구는 분명히 뜨거워진다고 하는데도 이상한파와 폭설은 왜 더 자주 발생하는 걸까?

● 빠르게 진행되는 지구온난화

이상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최근 한파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지구온난화 때문이라는 주장들이 있다. 지구온난화는 기후변화의 한 부분으로 냉각화(glaciation)에 반대되는 개념이며 엄밀히 말하면 빙하기에서 벗어나면서 온도가 상승하는 것도 온난화의 범주에 들어간다.

원래는 원인에 관계없이 ‘지구의 평균기온이 올라가는 현상’을 뜻하는 말이었지만 현재는 ‘산업혁명 이후 화석연료 사용 증가로 인한 기온의 증가’라는 좁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만큼 최근의 기온상승이 심상치 않다는 뜻이다.

46억 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지구의 기온은 끊임없이 요동쳤다. 공룡이 활동하던 중생대에는 섭씨 30도에 육박했는가 하면 빙하기에는 10도 정도로 뚝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오랜 시간에 걸친, 장기적인 변화였다. 현재의 기온 상승은 자연적인 주기에 따른 것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급격한 감이 있다.

2007년에 발간된 정부간 기후변화 협의체 (IPCC) 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100년간 지구 기온은 약 0.7도 올라갔다고 한다. 100년간 0.7도의 온도상승이 아주 느린 변화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정도의 온도변화는 이례적이라 할 만큼 빠르다. 2만 년 전 마지막 빙하기부터 온난한 시기인 1만 년 전까지 지구의 평균 기온이 약 5도 상승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최근의 온난화는 이보다 100배나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게다가 6000년 전부터 산업혁명이 시작될 때까지는 지구의 기온이 서서히 내려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 미루어 보면, 산업화 이후의 기온변화가 자연스러운 주기에 따른 변화가 아니라 인간 활동에 따른 결과, 특히 온실가스의 효과임을 알 수 있다. 21세기 들어 온난화 경향은 더욱 두드러졌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온난화가 과장된 해석이라고 생각하는 회의론을 쉽게 접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원인에 대한 논란은 있을지언정 온난화를 부정하는 입장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 북극진동과 한파

분명히 지구는 더워지고 있다. 그런데도 지역적으로 한파가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과학자들은 최근의 한파를 ‘급격한 온난화에 대한 지구의 반작용’이라고 해석한다. 수십억 년의 세월 동안 지구의 평균기온은 끊임없이 오르락내리락했지만 일정 범위를 벗어나지는 않았다. 추워지면 기온을 높이는 방향으로, 더워지면 낮추는 방향으로 지구는 나름의 노력으로 안정을 유지하려 한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의 국지적 한파는 급격하게 상승하는 기온을 진정시키려는 지구의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국지적 한파의 요인으로 북극진동 세기, 북유럽의 기단변화, 그리고 적도의 대류현상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작년과 올해 한반도에 닥친 한파는 이 중 북극진동의 세기 변화에 의한 것으로 여겨진다.

일반적으로 북극은 일조량이 적어 대기가 냉각되어 수축하는 반면 중위도의 대기는 상대적으로 따뜻하여 팽창한다. 이 때문에 중위도의 대기가 극지방의 대기를 밀어내어 북극을 중심으로 고리 모양의 편서풍 제트류가 발달한다. 평상시에는 중위도 대기의 세력이 강하여 제트기류가 극지방에 가깝게 형성되어 차가운 공기가 남하하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에어커튼’ 역할을 한다.

한편, 기온은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으므로 북극과 중위도 지방의 세력 크기가 주기적으로 변화한다. 이 과정에서 제트기류도 중위도 지역이 세력이 강해지면 북상하고 극지방의 세력이 강해지면 남하하는 식으로 위치가 바뀐다. 이러한 현상을 북극진동이라고 한다.




북극진동은 보통 ‘극진동지수’라는 수치를 이용하여 정도를 표시한다. 극진동지수는 중위도 기압이 북극보다 높으면 양의 값으로, 북극 기압이 중위도보다 높으면 음의 값으로 표시한다. 따라서 극진동지수가 양의 값이면 제트기류가 북극에 가깝게 형성되고 팽팽해진다.

이때는 시베리아, 알래스카, 캐나다 등의 지역이 중위도 공기의 세력권에 들어 평소보다 더 따뜻해진다. 반대로 극진동 지수가 음의 값이면 제트기류가 남하하여 중위도 지역까지 내려오며 동아시아, 북미 중동부 등에서는 더욱 남쪽으로 쏠려 돌출부를 형성한다. 이렇게 생긴 제트기류의 돌출부에 속한 지역에는 극지방의 찬 공기가 밀려들어 평소보다 훨씬 추워진다. 최근의 한파가 바로 이 과정으로 발생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북극진동의 지수가 계속 증가했으나 2000년 이후 극진동지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2009년 겨울에는 11월 말부터 무려 3주 동안 100년에 한 번 있을 정도로 매우 강한 음의 극진동 상태를 보였으며 그 결과 매서운 한파가 몰아닥쳤다. 올겨울도 지난해만큼은 아니지만 12월 중순부터 1월 중순까지 거의 한 달간 약한 극진동이 지속되어 한파의 원인이 되고 있다.

최근 극진동지수가 강한 음의 지수를 기록하고 제트기류 고리가 남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요 원인은 가을철 시베리아의 폭설이라 추측된다. 스키장에서 살이 타는 현상을 보면 알 수 있듯, 눈은 지표면보다 태양 에너지를 훨씬 잘 반사시킨다. 따라서 눈이 쌓이면 태양열을 반사하여 기온이 낮아지고 눈이 녹으면 태양열 흡수율이 높아져서 기온도 올라간다.

따라서 시베리아에 평년보다 눈이 많이 내리면 공기가 평소보다 더욱 차가워져서 시베리아 고기압이 강해진다. 시베리아의 공기가 차가워지면 수직 파동 활동이 활발해져 북극 대기 상층은 오히려 따뜻해진다. 결국 따뜻해진 북극의 공기 압력이 중위도보다 높아지므로 음의 북극진동 상태를 만든다. 이 과정은 보통 1~2개월 정도에 걸쳐 일어나기 때문에 가을철 시베리아의 눈의 양을 보면 이듬해 겨울의 한파를 대략 예측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최근 시베리아 지역의 눈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시베리아의 눈 증가는 북극 주변 온난화에 따른 해빙 감소와 연관이 있다고 추정된다. 북극해빙은 9월에 가장 작은 면적을 나타내는데, 최근 북극의 여름철 해빙 면적이 계속 줄어들고 있으며 겨울에조차 그 양이 감소하고 있다.

2010년 12월 중순에서 2011년 1월 중순 동안에는 북극해빙을 관측하기 시작한 이래 겨울철 해빙 면적이 가장 작았다. 북극해빙의 면적이 줄면 북극해의 수분 증발이 심해져서 시베리아의 적설량이 증가할 수 있다. 결국 극지방의 온난화가 시베리아의 강설을 유도하고, 시베리아에 쌓인 눈이 극지방 공기의 세력을 강화하여 제트기류를 남하시킨 결과 중위도 지역에 한파가 찾아온 것이다.

● 온난화에 따른 북반구 냉각의 또 다른 시나리오

극지역의 온난화가 계속될 경우 반작용으로 나타날 수 있는 또 다른 시나리오는 북대서양을 중심으로 한 북반구의 냉각이다. 이 시나리오의 핵심은 바로 북대서양 심층수다. 지구 전체의 심해는 북대서양과 남극 주변에서 가라앉은 물들로 채워지는데, 이중 북대서양에서 가라앉은 물은 태평양과 인도양을 거쳐 다시 북대서양으로 흘러가는 큰 컨베이어 형태의 순환을 하면서 지구 곳곳에 열을 전달해 주고 각 지역의 기후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해양의 컨베이어 흐름이 둔화되면 열의 흐름이 차단되기 때문에 심층수가 생성되었던 북대서양 및 북반구 전체에 냉각화를 초래할 수 있다. 온난화로 초래되는 이 시나리오는 영화 투모로(The Day after Tomorrow)에서 생생하게 묘사되기도 했다.

지구의 평균 기온이 상승하면 북대서양의 표층 수온이 상승하는 한편, 빙하가 녹아 담수가 바다로 흘러들어가면서 해양 표층수의 염분 농도가 낮아진다. 이 경우 표층수의 무게가 가벼워져서 바다 깊은 곳으로 잘 가라앉질 않아 심층수의 흐름이 생성되지 않는다. 북대서양의 표층수가 가라앉지 않으면 가라앉은 만큼의 물을 채워주기 위해 흐르던 멕시코만류가 약해진다.

멕시코만류는 북대서양을 반시계방향으로 크게 회전하는 해류로 저위도의 열을 북유럽과 북아메리카 동해안을 따뜻하게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온난화에 의해 북대서양 심층수 생성이 둔화되면 북대서양 북부로의 열전달이 차단되어 북대서양을 중심으로 한 북반구 지역이 냉각될 수 있다.

몇 년 전 영국의 해리 브라이든 교수는 “지난 50년간 북대서양 심해 25개 지점의 해류량을 측정한 결과 유럽 해안을 지나는 멕시코만류의 양이 1992년에 비해 30%나 줄었다”며 “멕시코만류(Gulf Stream)의 흐름이 약해지고 있어 유럽이 수십 년 내에 극심한 한파를 겪을 수 있다”는 전망을 보도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일부 보고에서는 북대서양 심층수의 생성량이 과거와 큰 차이가 없다는 결과도 있어서 북대서양의 냉각여부는 지속적으로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

올겨울 한반도, 동아시아, 북미, 유럽에 극심한 한파가 불어 닥쳤다고 해서 지구 전체의 기온이 낮아지지는 않았다. 남반구는 오히려 ‘내륙 쓰나미’라고 부를 정도의 홍수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는 여름이 매우 더웠던 해였으며, 지난 몇 년간 지구 전체의 연평균 기온을 보아도 기온은 지속적으로 올라가는 추세다. 올겨울 북반구 한파는 일부 지역과 계절에 국한된 현상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최근의 기상이변을 조금만 더 관찰해보면 지역과 계절에 따른 온도차가 극심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앞서도 보았듯 이는 급속한 온난화가 중요한 요인이며, 최근의 한반도 기후변화 추세로 볼 때 앞으로 당분간 한반도는 여름은 더욱 더워지고 겨울은 더욱 추워지는 양극성 기후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지구온난화의 속도를 늦추기 위한 다각도의 노력이 절실한 때다.

글=김성중(극지연구소 극지기후연구부장)
사진=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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