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게임’될 우려...상업화까지 곳곳 암초
2009년 05월 22일
류마티스 관절염은 ‘나쁜 기운이 흐른다’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 ‘류마’에서 유래했다. 이 병은 세균을 퇴치하는 백혈구가 오히려 관절을 공격해 발병한다. 현재 세계에서 약 2억 명이 이 질환을 앓고 있다.
류마티스에 효과적인 치료제로는 바이오의약품 ‘엔브렐’이 꼽힌다. 바이오의약품은 생물의 세포나 조직을 이용해 만든 약이다. 엔브렐의 시장 규모는 연간 약 50억 달러로 2012년까지만 특허가 보장된다.
다른 블록버스터 바이오의약품(시장규모 10억 달러 이상)의 특허들도 조만간 만료될 예정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올해 초 발표한 ‘주요 블록버스터 바이오의약품 특허만료 현황’에서 “향후 10년간 특허가 만료되는 의약품이 16개로, 시장규모는 500억 달러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국내 제약업계는 바이오의약품의 카피약 ‘바이오시밀러’가 새 수익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바이오시밀러 시장이 지속적으로 커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달 14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바이오시밀러 산학연 심포지엄’에서 삼성종합기술원 민호성 박사는 “2015년까지 바이오시밀러 시장이 250억 달러까지 성장할 것”이라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업계 관계자 300여 명이 모여 떠오르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바이오시밀러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다.
경쟁 과열...비싼 개발비 치루고 이익 없어
하지만 성급하게 뛰어들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너도 나도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뛰어들다보면 예상 순익을 내지 못 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일반 카피약보다 비싼 개발비, 아직 정해지지 않은 허가 규정, 미약한 영업망 등도 문제로 지적됐다.
바이로시밀러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평균 수백 억 원이 들어간다. 카피약(제네릭)을 만드는 것보다 평균 10~20배 정도 더 많은 금액이다. 연구기간도 2~3배 길다. 동식물 세포나 조직을 이용해 만들기 때문에 환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큰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이오시밀러가 오리지널 바이오의약품과 같다는 인정을 받으려면 생물학적 동등성 실험 등을 다시 해야 한다. 반면 제네릭은 오리지널 약의 화학반응을 그대로 따라하면 되기 때문에 오리지널 약과 다르게 나올 가능성이 없다. 특별한 임상실험을 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과잉경쟁이 이뤄지면 ‘제 살 깎아먹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투자비용만큼 수익을 올릴 수 없다는 것. 특히 시장이 크지 않은 국내에서는 더욱 그렇다. 현재 국내에는 5개 제약업체가 엔브렐의 바이오시밀러를 연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제약회사 메디톡스 이영필 박사는 “국내 성공을 바탕으로 해외 진출이 이뤄지는데 경쟁이 과해지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셀트리온 이석호 고문은 “경쟁이 생기면 국민은 더 싼 값에 약을 먹을 수 있어 손해 볼 일이 없다”며 “업체는 나눠 먹을 파이가 작아지기 때문에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초안수준 규정…나라마다 다르게 정해지면 낭패?
바이오시밀러에 대한 규정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다. 유럽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아직 초안 수준에 그치고 있다. 나라마다 허가·심사 규정이 다르게 정해지면 해당 규정에 맞게 서류 준비부터 새로 해야 한다는 얘기다. 식약청 관계자는 “규정이 각 나라마다 다르면 허가를 받고 수출하는데 번거로워 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07년부터 바이오시밀러에 대한 공통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려 논의 중이다. 현재 한국, 유럽연합, 미국, 일본, 인도, 중국, 이란 등 9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식약청 바이오의약품정책과 안광수 연구관은 “각 나라에서 약을 심사하는 기준은 거의 비슷하다”며 “WHO 가이드라인이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바이오시밀러 규정도 비슷하게 제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래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각국의 규정이 비슷해지면 국내 업체의 수출길이 더 넓어지겠지만 경쟁력 있는 외국 업체가 국내 시장에 들어오는 것도 쉬워지기 때문이다. ‘양날의 칼’인 셈이다.
이밖에도 넘어야 할 벽이 있다. 마케팅이다. 미국과 유럽 등에 약을 팔려면 해당 지역에 영업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수많은 해외 업체와 치열한 경쟁을 해야만 한다. 이영필 박사는 “현재 대부분 국내 제약회사는 해외에 영업 조직을 갖고 있지 않다”며 “연구개발에 비해 ‘비지니스화’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식약청은 바이오시밀러 규정안을 5월 안에 입안 예고하고 6월 말에 고시한다는 계획이다. 지식경제부도 지난 3월 ‘신성장동력 스마트 프로젝트’ 중 하나로 바이오시밀러를 선정한 바 있다. 이 프로젝트에는 올해 추경예산 3000억 원이 투입된다. 지경부는 당시 “향후 5년 내에 수십 조 원 규모가 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주요 블록버스터 바이오의약품의 특허 만료 시기. 자료제공 식품의약품안전청
변태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xrock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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